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개정판이 나왔기에 다시 읽었다. 읽으면서 여러 번 킬킬거렸는데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여전히 새롭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일단 무라카미 하루키는 문장을 정말 잘 쓴다. 군더더기가 없고 간결하다. 어떤 주제의 글을 쓰든 간에 위트를 잊지 않는다.


다만 그 위트의 대상은 힘없고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힘세고 목소리까지 큰 사람이다. 유명인이라든가 출판사라든가 방송사라든가 대형 백화점이라든가. 때로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나 나라를 조롱하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시로 일본의 치부를 들추고 비판한다. 한국에서야 작가든 누구든 나라 또는 정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일이 흔하지만, 일본에선 유명 작가는 물론 평범한 개인도 나라 또는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참 신기하고 용감하다는 생각이 든다(이것도 무라카미 하루키쯤 되니까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기 자신의 실수나 과오를 드러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그렇게 형편없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라는 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고등학교 시절 '피차별 부락'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본의 아니게 한 여학생에게 상처를 줬던 일을 소개한다. 무라카미는 그때까지 피차별 부락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었고 정확한 뜻도 몰랐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말을 함부로 써서 상처 준 것에 대해 그 여학생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무라카미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고 여학생을 두둔해주었던 다른 여학생들을 칭찬한다.


타인의 약점을 대놓고 조롱하거나 차별 또는 혐오의 근거로 삼는 일은 어른들 사이에서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때 그 여학생들은 십 대 중후반에 불과했는데도 가해자가 사과하고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입지 않게끔 사태를 잘 처리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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