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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 2018년 공쿠르상 수상작
니콜라 마티외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평점 :

살다 보면 한 번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추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 시절에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자라서 보면 당연하지 않기도 하고, 그 시절에는 영원할 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부지불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정신없이 살다가 문득 어린 시절을 반추하게 되는 계기는 의외로 사소한 경우가 많다. 아마도 2018 공쿠르상 수상작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을 쓴 프랑스 작가 니콜라 마티외에게 그 계기는 1990년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록그룹 너바나의 히트곡 <Smells like teen spirit>이 아니었을까.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1992년 프랑스 북동부의 작은 시를 배경으로 열다섯 살 소년인 주인공 앙토니가 성인이 되어 가는 6년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중학교 3학년 진급을 앞둔 어느 여름날. 앙토니는 언제나처럼 사촌과 함께 호숫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루해 죽을 지경인 앙토니는 호수 저편에 있다는 소문이 무성한 '누드 비치'에 가보자고 사촌을 조른다. 두 사람은 남의 카누를 훔쳐 타고 소문의 누드 비치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그곳에서 누드는 아니지만 못지않게 매력적인 또래 소녀들 - 스테파니와 클레망스를 만난다.
앙토니는 스테파니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하고, 스테파니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한밤중에 아버지가 아끼는 오토바이를 훔쳐서 동네 저편 부촌에서 열리는 파티에 간다. 앙토니는 그 나이대 소년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자신이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파티에서도 마찬가지다. 앙토니는 파티에서 스테파니를 만나 끝내주는 밤을 보내겠다고 마음먹지만, 막상 파티에서 스테파니를 마주하자 숙맥처럼 제대로 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마리화나에 취해 기절한다. 게다가 아버지가 아끼는 오토바이를 누군가에게 도난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그 바람에 앙토니는 오토바이를 잃어버린 채로 몇 시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집에서 근신하는 신세가 된다.
앙토니의 이후 인생도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앙토니는 언제까지나 무료할 정도로 평화로운 마을에서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싸움이 잦았던 앙토니의 부모는 결국 이혼을 택하고, 앙토니는 일찍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 자기 앞가림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앙토니는 이런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들지만, 그때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고 결국에는 어머니가 있는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하지만 6년 전 여름처럼 호숫가에 앉은 앙토니는 더 이상 누드 비치를 동경하는 철부지 소년이 아니다.
공쿠르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난해하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이 소설은 예상과 달리 문장이 잘 읽히고 내용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주인공의 성별은 다르지만, 90년대 배경의 성장 소설이라는 점에서 영화 <벌새>와 통하는 점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소설도 그렇고 <벌새>도 그렇고, 최근 들어 90년대를 조명하는 작품들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90년대는 성장과 쇠락이 공존하는 시대였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소설에 짙게 깔려 있는 정서 또한 성장과 쇠락이다. 개인과 시대가 무관한 것 같아도 결국엔 조응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