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나 도쿄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한정현 지음 / 스위밍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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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본의 한 고등학교 댄스부의 퍼포먼스 영상이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일본 버블 시기의 복고풍 패션과 진한 메이크업, 맨발로 추는 댄스를 그대로 재현한 영상을 보면서 수많은 일본인들이 환호했고, 심지어는 외국인들도 그 영상에 관심을 보였다. 그중에는 한국의 여성 코미디언들이 있었고, 그들은 몇 달 간 지옥훈련을 불사하며 그 영상에 나온 댄스를 완벽하게 마스터했다. 그들이 바로 김신영, 송은이, 신봉선, 안영미, 김영희(현재는 탈퇴)로 구성된 '셀럽 파이브'이다.


셀럽 파이브의 데뷔곡 <셀럽이 되고 싶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정현의 소설 <줄리아나 도쿄>에 나오는 '줄리아나 도쿄'의 분위기를 비교적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줄리아나 도쿄는 허구의 공간이 아니라,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사회 현상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디스코 클럽의 이름이다. 줄리아나 도쿄를 찾은 여성들은 <셀럽이 되고 싶어>를 부르던 시절의 셀럽 파이브처럼 몸에 쫙 붙는 짧은 드레스를 입고, 배우처럼 화려한 화장을 하고, 손에 쥘부채를 들고 펄럭이며 신나게 춤을 췄다. 매일 밤 수천 명이 찾아와 춤을 추고 놀았던 인기 클럽이 갑자기 문을 닫은 이유가 무엇인지 소문은 무성하지만 정확한 답은 없다.


<줄리아나 도쿄>는 줄리아나 도쿄에 가본 적도 없고 그 시절에 일본에 살지도 않았던 한국 여성이 줄리아나 도쿄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여성의 이름은 한주. 한국의 한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한주는 같은 대학원에 다니는 남자친구의 폭력에 시달리다 한국어를 말하지 못하는 병에 걸리고, 쫓기듯이 일본으로 간다. 어느 노부부의 도움으로 도쿄에 잘 정착하게 된 한주는 서점에서 일하다 유키노라는 남성을 알게 된다. 둘은 경제적 이유로 함께 살게 되고,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더없이 편하고 따뜻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키노가 갑자기 사라지고, 한주는 유키노에 관해 묻는 전화를 받는다. 놀랍게도 그 전화는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다.


<줄리아나 도쿄>에는 한주와 유키노 외에도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성 중심 사회로부터 차별 또는 배제되는 것을 넘어 직접적으로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맞았으면 도망치거나 살려달라고 소리치라고 말하지만, 맞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맞았을 때는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도망치거나 살려달라고 소리쳐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설사 정신을 차리고 용기를 내서 도망치려 해도 발이 떨어지지 않고, 거나 살려달라고 소리치려 해도 입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줄리아나 도쿄에 대해 알게 된 한주는 그곳이 단순히 하룻밤 신나게 놀고 떠나는 유흥의 장소가 아니라, 일상에선 목소리도 낼 수 없고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여성들이 유일하게 에너지를 발산하고 스트레스를 방출할 수 있는 곳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줄리아나 도쿄가 사라진 후, 그 '유일한 장소'를 잃어버린 여성들이 어떻게 되었을지를 궁금해한다. 과연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소설을 다 읽고 검색창에 줄리아나 도쿄를 입력해봤다. 검색 결과 2008년 1일 한정 이벤트로 '줄리아나 도쿄 부활 이벤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현장을 취재한 뉴스 영상도 볼 수 있었다. 영상에 나오는 한 여성은 현재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으로, 줄리아나 도쿄가 하룻밤만 부활한다는 소식을 듣고 옛날 생각이 났다고 했다. 그가 예전처럼 몸에 쫙 붙는 미니 드레스를 입고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니, 나도 한주처럼 직접 가본 적도 없는 줄리아나 도쿄가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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