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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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십 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가 혼자서 여행을 다녀온 후로 묘하게 바뀐 것을 발견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세랑의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의 주인공 한아의 상황이 그렇다. 한아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저탄소 생활을 몸소 실천하는 의류 리폼 디자이너다. 한아에게는 스무 살 때부터 사귄 경민이라는 남자친구가 있다. 한아는 어느 한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고 항상 어디론가 떠날 생각만 하는 경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경민이 별똥별을 보러 혼자서 캐나다로 떠나고, 한아는 경민이 돌아오면 헤어지자는 말을 하기로 다짐한다.


얼마 후 한아는 캐나다에 운석이 떨어져 천체 관측 중이던 사람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보고 크게 놀란다. 뉴스를 보자마자 경민에게 연락을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경민은 전화를 받지 않고 한아의 시름은 점점 더 커진다. 다행히 며칠 후 경민이 무사한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달라진 듯한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한아가 뭘 하든 관심도 없고 한아에게 늘 퉁명스러웠는데, 캐나다에서 돌아온 후의 경민은 한아가 하자는 대로 잘 따르고 한아에게 훨씬 다정할뿐더러, 경민을 좋아하지 않았던 한아의 절친 유리마저 경민과 친해질 만큼 사람이 훨씬 좋아진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는 판타지적 상상력이 가미된 말랑말랑한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소설의 내용을 여러 번 곱씹어 보니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비교적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남친 경민'과 '인간 남친 경민의 모습을 한 외계인' 중에 한아는 후자를 선택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인간 남친 경민'을 이해할 기회가 오지만, 그것은 오래전 한 시절을 함께 보냈던 사람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의 감정일 뿐, 나를 특별하게 여겨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에 대한 연모의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사랑받고 있다'는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다면,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대상이 꼭 인간이어야 하는 걸까. 외계인과도 사랑할 수 있다면, 나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사람, 나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 나와 성이 같은 사람과 사랑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일까. 동물은, 기계는, 책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걸까. 어쩌면 이는 한아가 지구의 고통에 극도로 공감하고, 자원 절약과 환경 보호를 말로만 하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점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10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도 새롭고,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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