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5 - 열도의 게임 본격 한중일 세계사 5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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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시니스트의 역사 만화 시리즈 <본격 한중일 세계사> 5권은 태평천국 운동의 결말과 메이지유신 직전의 일본의 정세를 다룬다. 태평천국 운동은 아편전쟁과 함께 청나라 멸망의 신호탄이 된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평천국 운동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천만~3천만에 달하며, 중국 대륙의 곡식과 각종 물자를 운반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인 장강이 태평천국 전쟁으로 인해 쓸 수 없게 되어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그중 일부는 동남아시아, 하와이,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갔다. 이 와중에 함풍제가 사망해 황실의 주인이 바뀌고, 베이징 조약 체결로 서구 열강의 중국 대륙 침탈이 본격화되며 청나라 멸망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청나라가 국제 정세에 둔감해 망조에 접어든 반면, 일본은 16세기부터 국제 정세의 중요성을 깨닫고 네덜란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해 비교적 서양 열강에 맞설 여력이 있는 상태로 19세기 중반을 맞이하게 되었다. 문제는 일본의 복잡한 정치 구조다. 중앙 정치 제도를 보면, 한국과 중국은 왕이 전국을 직접 통치하는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인 반면, 일본은 예부터 상징적 권력에 불과한 왕을 대리해 실질적 권력에 해당하는 쇼군이 통치하는 이원적 체제를 유지해 왔다. 지방 정치 제도를 보면, 한국과 중국은 왕이 임명한 관리가 각 지방을 통치하는 방식이지만, 일본은 각 지방마다 다이묘(일종의 영주)가 존재해 중앙 권력과는 별개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의 19세기 중반은 왕이 이끄는 조정, 쇼군이 이끄는 막부, 각 지방의 다이묘가 서로의 명분과 이익을 위해 대거 충돌한 혼란의 시대였다. 일단 현재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막부는 흑선을 끌고 들어온 서양 세력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자 그동안 막부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세력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가깝게는 국학의 다른 이름인 '미토학'을 만든 미토 번의 탈번 낭인들과 텐구당, 멀게는 세키가하라 전투에 패한 이후부터 도쿠가와 막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조슈 번과 도사 번, 사츠마 번 등이다.


이들이 공통으로 내세운 기치는 '존왕양이', 즉 왕실을 높이고 외세를 물리치는 것이었다. 일본의 왕실은 에도(지금의 도쿄)에 있는 막부가 아닌 교토에 있는 일왕 조정. 고로 이들은 막부가 아닌 일왕의 편에 섰고, 이는 막부를 타도하려는 '도막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 영국군이 조슈 번으로 쳐들어왔고, 전부터 조슈 번과 적대적인 관계였던 막부에선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전국의 양이 세력이 점점 더 조슈 번을 지지하게 되었고, 급기야 조슈 번이 교토로 쳐들어오는 금문의 변이 발발하며 정국은 극도의 혼란 상태가 된다.


이러한 일본의 역사가 한국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었는데, '굽씨의 오만잡상'이라는 코너 속 이야기를 읽고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일부는 조선에 돌아오고 일부는 일본에 남아 계속 도자기를 만들었다. 이들 대부분이 지금의 규슈의 일부인 사츠마 번에 터전을 잡았는데, 사츠마 정부는 심수관 가문으로 대표되는 조선 출신 도공들이 만든 도자기를 유럽에 팔아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서양식 무기와 기계 등을 수입하거나 제작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의 도공들 덕분에 일본의 도자기 산업이 크게 발전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 출신의 도공들이 만든 도자기를 외국에 팔아서 그 돈으로 서양식 무기와 기계를 사들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체적으로 서양을 본뜬 무기를 만들고 산업화를 시도했다는 것은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역사에 만약(if)이란 없다고 하지만, 만약 그때 사츠마 번이 아닌 조선 정부가 조선 도공들이 만든 아름다운 도자기들을 외국에 수출했다면 역사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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