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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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에는 재벌이 왜 그렇게 많이 나와?" 언젠가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외국인 친구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한국 드라마에 유독 재벌을 비롯한 최상류층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는 재벌은커녕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오너도 쉽게 만나지 못하는 형편인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정치든 경제든 어떤 주제든 간에 불평등 담론이 생기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상위 1퍼센트의 최상류층만 적대시하고 나머지 99퍼센트는 비슷하게 불행한 처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99퍼센트 안에서도 엄청난 격차가 존재하는데 말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20 VS 80의 사회>의 저자 리처드 리브스의 주장도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한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다수의 예상을 깨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백인 남성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한 것도 있지만 소득 수준상 중하위 계층의 불안 심리를 건드린 것이 주효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학을 나오지 못한 중하위 계층 백인 투표자의 3분의 2로부터 표를 얻었다. 중하위 계층의 적은 트럼프와 같은 상위 1퍼센트의 최상류층 재벌이 아니라 상위 20퍼센트 정도의 중상류층 전문직 종사자다. 중상류층은 최상류층을 적대시하고 자신들을 중하위 계층과 같은 계급으로 치부하지만, 중하위 계층은 자신들과 달리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으며, 안정적인 보험 혜택을 받고, 도시에 살면서 자녀들을 모두 대학에 보낼 형편이 되는 중상류층과 결코 자신들을 동일시하지 않으며, 이러한 적대감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상위 1퍼센트에 해당하는 최상류층이 여러 방식으로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고 계급 장벽을 만드는 것처럼, 상위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중상류층도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자신들의 부와 지위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계급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중상류층 아이들이 누리는 계급적 혜택이라고 하면 '양친이 있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부모 모두 교육 수준이 높으며, 좋은 동네에 살고, 인근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 정도였다. 최근에는 여기에 더해 중상류층 부모들이 자식들로 하여금 계속 중상류층에 속하도록 만드는 다양한 메커니즘이 개발되었다. 저자는 이를 '기회 사재기 메커니즘'이라고 부르며, 대표적인 것으로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 동문 자녀 우대와 같은 불공정한 대학 입학 사정 절차, 알음알음 이뤄지는 인턴 자리 분배 등을 든다. 이러한 제도 또는 문화는 중상류층 아이들이 계급적으로 더 낮은 지위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유리 바닥'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기회 사재기를 막고 능력 육성의 기회를 평등하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들을 제시한다.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를 철폐하고, 동문 자녀 우대와 같은 불공정한 대학 입학 사정 절차를 없애고, 알음알음 이뤄지는 인턴 자리 분배를 금지하는 것 등이다. 분명 바람직한 조치들이고 실현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최근 문제가 된 모 정치인의 자녀 입시 비리 의혹에서 보듯이, 정치적으로는 진보 성향인 사람들도 자녀의 입시나 재산 증식 같은 세속적 욕망 앞에 약해지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상위 20퍼센트의 중상류층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내려놓지 않고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거나 같은 중상류층 사람들과 나눠먹기 하는 행위를 계속하면 결국 사회 전체가 망가지고 무너질 거라고 경고한다. 이는 최상류층의 폐쇄적인 행태와 그로 인한 폐단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회사에서 가장 오래 일하고 뛰어난 실적을 보인 직원이 아니라 새파랗게 젊고 경력도 일천한 오너의 자식이 회사를 물려받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그런 회사들이 대체로 선대 시절의 성장과 번영을 유지하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비슷한 행태가 사회 전반으로 퍼질 때 어떤 해악이 일어날지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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