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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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들이 창작을 하지 않는 동안 주로 뭘 하는지 아는 것은 의외로 즐거운 일이다. 그런 정보는 주로 창작자들이 직접 자신의 일상에 관해 쓴 에세이집에 나오기 마련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는 그가 평소에 두부를 즐겨 먹고 달리기를 습관처럼 한다는 정보가 나오고, 김연수의 에세이에는 틈만 나면 여행을 한다는 정보가 나온다. 별로 대단한 정보는 아닐지 몰라도 이런 정보가 있으면 창작자가 더 가깝게 느껴지고, 창작자의 작품을 이해하거나 분석하는 데에도 약간의 힌트가 된다.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 <조금만 더 가까이> 등을 만든 영화감독 김종관이 궁금한 독자에게는 이 책 <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2012년에 출간된 저자의 첫 책 <사라지고 있습니까>의 개정증보판이다. 1부부터 4부까지는 초판에 실린 글이 실렸고, 5부에는 그동안 저자가 새로 쓴 글이 실렸다. 책이 바뀌는 동안 저자의 삶도 많이 바뀌었다. 초판이 나왔을 때만 해도 저자가 이만큼 영화를 찍기 전이었고 지금만큼 유명하지도 않았다. 당시만 해도 저자는 이문동에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효자동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유효한 건, 저자가 지나온 시간들의 기억이 저자의 영화 곳곳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코 유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공중변소를 쓰는 산동네 판잣집에 사는 것을 들킬까 봐 학교 친구들을 절대 집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보따리에 이런저런 생필품을 담아 전국의 장터를 떠돌며 팔러 다니는 아버지를 따라다닌 적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아버지가 지방에 차린 속옷가게 장사를 도우러 서울과 지방을 오갔다. 혼자 놀기에 익숙하고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를 떠돌았던 경험은 훗날 영화감독이 되고 나서도 이어졌다. 집에는 제대로 된 비디오 한 대 없었지만 동네 만화방과 친구네 집, 동네 동시 상영관 등을 오가며 수많은 영화를 봤고, 그렇게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저자가 영화를 만들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고 많은 대중들의 호응을 얻는 순간도 소중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허비되고 실패하고 아깝게도 다시 올 수 없는 지난날'이 영화를 통해 재현되고 쓸모 있는 경험으로 바뀔 때라고 말한다. 외롭고 힘들었던 유년 시절의 기억,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며 치열하게 살았던 청년 시절의 기억 모두 영화로 만들면 아름다워지고 특별해진다. 어쩌면 영화뿐 아니라 모든 창작의 매력이 결국 이것이 아닐까. 쓸모없어 보이는 추억을 쓸모 있게 만드는 것. 추억의 쓸모를 만드는 것. 나의 추억 중엔 어떤 추억이 쓸모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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