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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중록 3 ㅣ 아르테 오리지널 3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평점 :

쓰러진 듯이 자고 일어났더니 온 가족이 죽어 있고 내가 그들을 죽인 범인으로 몰린다면? 처처칭한의 장편소설 <잠중록>을 끝까지 다 읽은 건, 이런 기막힌 상황에 몰려 있는 주인공 황재하의 미래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관군의 추적을 피해 장안으로 숨어 들어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몸을 숨긴다고 들어간 마차가 하필이면 황제의 넷째 아우이자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기왕 이서백의 것이었다.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서백이 키우는 물고기 아가십열의 비밀을 풀어주는 대가로 이서백의 환관 노릇을 하며 정체를 숨기기로 합의한다. 그리하여 황재하는 명문가 규수에서 예쁘장한 외모의 소환관으로 신분을 바꾸고 살게 된다.
<잠중록>은 총 4권으로 되어 있으며, 각 권마다 궁 안팎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황재하와 이서백이 힘을 합쳐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3권에서 황재하와 이서백은 황재하의 고향인 성도로 가는 길에 자객의 습격을 받는다. 이서백이 큰 부상을 입어서 이대로는 성도까지 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황재하는, 이서백을 데리고 깊은 산중에 있는 절간으로 간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오래인 절간에서 이서백과 황재하는 처음으로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가까스로 체력을 회복한 이서백과 황재하는 우여곡절 끝에 성도로 들어가고, 오랜만에 찾은 고향인 성도에서 황재하는 불의의 죽음을 맞이한 자신의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한편,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이 누구인지 반드시 찾겠다고 의지를 불태운다.
<잠중록>을 끝까지 다 읽기 전에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조가 보이지 않았는데, 4권까지 다 읽은 지금은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조가 명확하게 보인다. <잠중록>은 황재하와 세 남자의 인연을 그린 소설이다. 황재하에게는 세 명의 남자가 있다. 첫 번째는 어린 시절의 정인인 우선이고, 두 번째는 집안에서 정한 약혼자인 왕온이며, 세 번째는 살인자의 누명을 쓴 후에 만난 기왕 이서백이다. <잠중록> 각 권은 황재하와 세 남자의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잠중록> 1권은 황재하가 기왕 이서백을 만나는 과정을 그리고, 2권은 둘의 인연이 깊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3권은 우선과의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4권은 왕온과의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다(이 과정에서 기왕 이서백과의 관계도 다양한 변화를 거친다).
한편 황재하가 수사하게 되는 사건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운소육녀'가 있다. 운소육녀는 양주 윤소원에서 기예가 뛰어난 기녀 의자매를 일컫는 말로, 인원은 총 여섯 명이며, 공손연, 매만치, 난대, 은노의, 부신원, 그리고 왕 황후가 속해 있다. 운소육녀는 수많은 살인사건의 용의자 또는 피해자로 등장하는데,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매번 그들이 등장해 뭔가 큰 한 방이 있을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황재하를 숭배하는 주자진의 활약도 볼 만하다. 주자진은 명문가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출세나 명예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사건 수사와 시체 부검에만 관심이 있다. 수사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지만 추리에는 재능이 없는 모습이 마치 셜록 홈스의 오른손 왓슨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