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말할 수 있다면 - 여행의 여섯 가지 목소리
문상건 지음 / 슬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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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해외여행은 부유한 사람들이나 경험해볼 수 있는 사치재 같은 것이었다. 반면 지금은 단돈 몇십만 원이면 누구나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한 나라에서 현지인처럼 생활하는 '한 달 살기', '두 달 살기' 등에 도전하는 여행자도 늘고 있다. 이렇게 해외여행이 흔해지고 또 뻔해지다 보니 여행의 의미와 목적을 생각해볼 기회 또한 드물어지고 있다. <소소하게, 여행중독>의 저자 문상건은 여행의 의미가 퇴색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이 책 <여행이 말할 수 있다면>을 썼다.


저자는 지금이 마치 '해외여행 의무화 시대' 같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딱히 휴가철이 아니어도, 별다른 목적이나 계획이 없어도, 쉽게 여행을 떠나고 쉽게 다음 여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여행작가로서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여행이 최고라거나 여행보다 더 좋은 경험은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여행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괜찮다. 여행을 자주 하지 않아도 괜찮고, 일부러 많은 나라를 여행할 필요도 없다. 여행 별거 없다, 이제 여행은 충분히 했다고 깨닫는 것도 큰 공부다.


저자에게 여행은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을 새롭게 생각해보게 해주는 성찰의 기회다. 저자는 미얀마에서 트레킹을 하다가 충격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트레킹 중간에 목에 수십 개의 링을 한 모습으로 유명한 카렌족의 마을에 들렀다. 저자는 그들의 원시적인 전통과 순수한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 기대했는데, 마주한 건 그들이 관광객에게 돈을 받고 사진 촬영을 하게 해주거나, 촬영을 대가로 기념품 숍에서 물건을 사게 하는 모습이었다. 저자는 이를 계기로 '문명과 동떨어져 사는 소수 민족을 운 좋게 발견했다'고 하는 말은 거짓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행이 허세 또는 과장에 불과하더라도, 떠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풍경, 할 수 없는 경험, 알 수 없는 기분은 분명히 있다. 저자는 자신이 만약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고, 여행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고민하며 여행할 일도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여행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이다. 굴레 안에 있는 사람은 답답한 줄 모르지만, 한 번 굴레 밖으로 나와본 사람이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기는 어렵다. ​


저자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행자들도 부럽지만, 한참 나이가 많은 중장년층이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등 인생의 수많은 고비를 넘기고 성숙한 머리와 마음의 상태로 떠나는 여행은 어떤 느낌일까. 젊은 시절의 체력은 없어진 지 오래여도, 젊은 시절 못지않은 호기심과 열정으로 여행에 임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저자의 마음까지 두근댄다. 이 밖에도 오랜 경력의 여행자이자 여행 작가인 저자의 여행에 관한 생각, 여행을 대하는 태도가 잘 드러나는 에세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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