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식 중정 1
김연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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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최고 부잣집의 아가씨 '세희'는 부모님이 마련해준 공부방에서 나혜석의 <이혼 고백장>을 읽을 만큼 깨인 여성이다. 그런 세희의 눈에 남존여비, 부부유별 같은 구습이 여전히 남아있는 집안 풍경이 마음에 들 리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엣가시인 건 집안의 장남이자 배다른 오빠인 재희다. 재희는 어린 아내와 사별한 직후인데도 기생과 노느라 며칠째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참다못한 세희는 어느 날 집안의 아름다운 종 '윤'을 자신의 공부방으로 불러서 이런 제안을 한다. "오라버니를 꼬셔볼래?"


<이슈>에 연재 중인 김연주 작가의 신작 <회랑식 중정>은 도입부부터 독특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다. 공간적 배경인 회랑식 중정이 있는 석조 저택은 서양의 건축 방식으로 지어져 시대적 배경이 일제강점기임을 잊게 만든다. 인물들이 입은 옷이나 방 안의 가구들도 개화기 이후에 들어온 것들인데, 인물들이 하는 말이나 생각은 개화기 이전 느낌이다. 이런 불일치 또는 부조화가 오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앞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이 만화의 분위기도 좋아할 것이다.)


1권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세희가 자신의 공부방으로 윤을 부른 후, 책을 들어 표시해둔 곳을 읽어보라고 하는 대목이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그 유명한 나혜석의 <이혼 고백장>이다. 윤은 세희가 시키는 대로 글을 읽다가, 세희가 재희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 글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시대에, 남존여비가 당연한 줄 아는 답답한 집안에서 태어난 깨인 여성이라니. 앞으로 세희가 이 집안에서 무슨 일을 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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