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살짝 비켜 가겠습니다 - 세상의 기대를 가볍게 무시하고 나만의 속도로 걷기
아타소 지음, 김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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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산 게이의 <헝거> 이후, 이렇게 솔직하고 대담한 에세이를 읽은 게 참으로 오랜만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낮에는 회사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트위터에 글을 쓰는 일본의 트위터리안 아타소(@ataso00)다. 저자는 오랫동안 자신이 여자인 것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주변 여자들과 자신을 비교할 때마다 압도적으로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처럼 못생긴 게 여자인가, 같은 여자인 게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을 연기하면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서 싫었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면 추해서 싫었다.


저자가 이렇게 복잡한 성격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저자의 어머니는 늘 저자를 '못난이'라고 불렀다. 일곱 살 아래인 여동생에게는 언제나 '예쁘다'고 칭찬하면서, 저자에게는 못생겼다고 욕하고 때렸다. 저자의 친척과 친구들은 "여자의 무기는 얼굴이다." "여자는 조금 멍청한 편이 낫다", "여자는 남자랑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 행복해질 수 있다" 같은 말을 거리낌 없이 했다. 처음엔 저자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울컥했는데, 점점 그 말을 믿고 따르게 됐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만난 남자들을 보니 결국 다 여자의 외모를 따지고, 자신보다 똑똑하고 학력 높고 돈 잘 버는 여자는 싫어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부합하지 않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는 끔찍한 결과를 불렀다. 저자에게는 M군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M군은 평소 저자에게 "네 성별이 여자라는 게 안 믿겨", "아마 너가 눈앞에서 알몸으로 있어도 안 당길걸"같은 말을 했다. 그래서 저자는 당연히 M군과는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M군이 저자를 엄청 취하게 한 다음 강간을 시도했다. 그 사실을 안 순간, 저자는 M군이 실은 자신에게 성욕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에 묘한 승리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런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남자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인간으로서의 존엄보다 중요하다니. 이건 정상이 아니다.


이후 저자는 연애나 결혼보다도 인간으로서 자립하는 일에 더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직장을 구했고, 집에서 나와 자취를 시작했고, 언어폭력은 물론 신체적 폭력까지 일삼았던 가족과는 연을 끊었다. 장래 희망은 없지만 하루하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마음은 확고하다. 학창 시절, 범프 오브 치킨(Bump of chicken)의 가사가 좋아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꾸준히 글을 쓴 지 올해로 10년째다. 이제는 제법 유명한 트위터리안이고, 책도 내서 작가라고 불린다. 여자라는 굴레를 버린 덕분이다.


저자는 가끔 어릴 적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입받았던 생각대로 어른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그때는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여자로서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결혼도 출산도 자기 자신의 행복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 결혼이나 출산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때는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그게 옳고 당연한 일인데, 어느 누구도 그게 옳고 당연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나를 '인간'이 아니라 '여자'로 본 사람들이 그랬다. 이제부터 나는 '여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런 저자의 단호한 결심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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