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 걸 클래식 컬렉션 1
요한나 슈피리 지음, 이경아 옮김 / 윌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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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가 무슨 이야기였더라?' 어린 시절 엄마가 사주신 명작 동화 전집 중에 <하이디>가 있었고 그걸 읽은 기억도 나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이었는지 가물가물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하이디의 친구 클라라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가 결말에 이르러 마침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걷는 그 유명한 장면만 떠오를 뿐, 대체 왜 클라라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서 다시 자신의 다리로 걸을 수 있게 되었는지, 애초에 하이디와 클라라는 어떻게 친구가 되었고, 하이디는 어떻게 해서 산에 살게 되었는지 등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읽어 보았다. 내 기억 속에서 잊히기 일보 직전인 동화 <하이디>의 원작을.


<하이디>는 이렇게 시작한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 마이엔펠트. 젊은 여자가 한 손에는 꾸러미를 들고 다른 손에는 다섯 살가량 된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산을 오르고 있다. 지나가던 사람이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묻자 여자는 '알프스 삼촌'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알프스 삼촌은 마이엔펠트에서 가장 높은 산자락에서 혼자 살고 있는 일흔 살 가량의 할아버지다. 마이엔펠트 사람들은 마을 가까이에 살지도 않고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지도 않으며 혼자 지내는 이 노인을 괴짜라고 여기고 두려워한다. 여자는 하나뿐인 언니가 남긴 딸인 아이를 그동안 맡아 키웠는데 얼마 전 부잣집에 좋은 조건으로 채용이 되면서 더 이상 아이를 돌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의 할아버지인 알프스 삼촌에게 아이를 맡기고 도망치듯 산을 내려온다.


짐작했겠지만 이 아이의 이름이 바로 하이디다. 부모는 일찍 죽고 이모에게 버림받고 남은 혈육이라고는 할아버지뿐인 가엾은 하이디. 사람들은 알프스 삼촌이 워낙 괴짜라서 하이디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산을 내려올 거라고 예상하지만, 예상과 달리 하이디는 할아버지와 오순도순 즐겁게 지내며 무럭무럭 자란다. 하이디는 염소 치는 목동 페터와 페터의 할머니인 그래니, 페터의 어머니인 브르기테와도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하이디의 이모가 다시 찾아와 하이디를 도시로 데려간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름난 부자인 제제만 씨의 외동딸 클라라의 친구로 하이디를 추천한 것이다. 하이디의 이모는 하이디가 부잣집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풍족하게 생활하는 것이 하이디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도시로 온 하이디는 점점 얼굴의 혈색이 나빠지고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하이디>에 나오는 인물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하이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이디를 미워하는 사람들이다. 하이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이디를 하늘이 내린 선물이자 축복으로 여긴다. 하이디가 하는 말이나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를 예사롭지 않게 여기고 기특해 하고 칭찬한다. 하이디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거나 실수를 해도 야단치거나 닦달하지 않고 하이디가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원해준다. 반면 하이디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하이디가 무엇을 해도 싫어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싫어한다. 하이디의 이모 데테와 제제만 씨 집의 가정부 미스 로텐마이어, 제제만 씨 집의 하녀 티네테가 그렇다. 이들은 자기가 먹고사는 일에만 관심 있을 뿐, 하이디의 상태나 요청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다. 그 결과 이들은 모두가 하이디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을 때 호명 받지 못한다.


<하이디>는 아동을 위한 동화인 동시에 신앙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이디의 할아버지는 오래전 신앙을 버리고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교회 목사가 찾아와 하이디를 학교에 보내고 하이디와 함께 교회에 나오라고 부탁했을 때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나 하이디가 제제만 부인의 도움으로 신앙을 가지게 되면서 하이디의 할아버지도 다시 신앙을 가지게 되고 하이디와 함께 교회에 나가게 된다. 하이디의 신앙생활에 있어 제제만 부인과 그래니의 역할이 매우 크다. 제제만 부인을 하이디가 제제만 씨 집에 있는 동안 향수병에 걸려 힘들어할 때 힘이 되는 말을 해줬다. "그분은 우리에게 진짜 좋은 게 뭔지 다 아셔. 우리가 뭔가를 부탁해도 그게 우리에게 옳지 않으면 그걸 주시지 않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계속 기도를 하면 더 좋은 것을 찾아주시지."(162쪽) 그래니는 하이디로 하여금 읽기를 배우고 찬송가를 부르게 했다. 하이디는 클라라와 클라센 선생님이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이 신앙으로부터 구원받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감내할 힘을 준다.


<하이디>는 또한 자연의 힘과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이야기이다. 불우한 소녀 하이디는 이모 손을 잡고 산으로 온 후로 눈에 띄게 혈색이 좋아지고 몸이 건강해지고 성격이 안정된다. 또다시 이모 손에 이끌려 도시로 갔을 때는 산에서와 달리 맛있는 빵을 매일 마음껏 먹고 푹신한 침대에서 잘 수 있게 되었지만,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는 자연을 보지 못하고 귀여운 염소 떼와 놀 수 없다는 아쉬움에 푹푹 시들어갔다. 산으로 돌아와서야 원래 모습을 되찾았고, 하이디를 만나기 위해 산으로 온 클라라도 자연 속에서 비로소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했다.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요즘에는 새롭지도 않은 주제이지만, 근대화와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1880년대 유럽에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주창하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건 용감하고 특별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하이디>는 남성 중심의 문학계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스스로의 힘과 재주로 주변 어른들을 놀라게 하고 감화시키는 이야기라는 점이 좋다. 하이디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는 어른이 제제만 부인과 그래니 같은 여자 어른이라는 점도 좋고, 할아버지와 제제만 씨, 클라센 선생님 같은 남자 어른들이 하이디에게 도움을 받거나 하이디로 인해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도 좋다. 같은 여자아이인 클라라와는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는 반면, 남자아이인 페터가 하이디와 클라라 사이를 질투한 나머지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도 신선하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여자가 문제 상황에 처했을 때 구해주는 건 남자라고 은연중에 학습시키는 이야기들을 오랫동안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하이디>의 이런 미덕들이 더욱 눈에 띄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하이디>는 마치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이름만 기억나는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처음엔 기억나는 게 이름뿐이었는데 어린 시절 추억을 하나둘 이야기하는 동안 나조차도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고, 그 친구가 당시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조금씩 생각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참 동안 잊고 지낸 친구를 되찾았으니 앞으로는 더욱 소중히 여겨야지. 하이디의 태양처럼 밝고 활기찬 기운이 벌써부터 나를 생기 있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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