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한 인간 - 개정증보판
박정민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배우 박정민에 대해 잘 몰랐다. <파수꾼>,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사바하>, <타짜 : 원 아이드 잭> 같은 영화에 비중 있는 배역으로 출연한 배우라는데 공교롭게도 이 중에 본 작품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내게 이 책은 배우 박정민이 쓴 에세이집이 아니라 작가 박정민이 쓴 에세이집으로 읽힌 셈인데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일단 재미있다. 학창 시절 내내 연예인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학생이었던 저자는 대학 입학 후 연기자의 꿈을 품고 극단에 들어갔다. 명문대에 다니는 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연기를 하겠다고 하자 부모님의 반대가 대단했다. 한예종 연기과 입학 시험도 보았지만 면접장을 통과하지 못했다(이듬해에 재도전해 합격했다). 겨우겨우 독립영화로 데뷔해 조금씩 필모를 쌓고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현실은 퇴직한 아버지가 집에 계신 줄도 모르고 목청 높여 걸그룹 노래를 부르다가 아버지가 집에 계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PC방으로 도망치는 찌질한 모습이다. 외국 여행 가면 유명한 한국 연예인들과 친한 사이라고 뻥쳐서 안주를 얻어먹(는 줄 알았다가 뒤통수 맞)고, 친구들이 잘 나간다고 한 턱 내라고 하면 아버지 카드로 술값을 치르는 형편이다. 연예인은 전부 바쁘고 돈이 많다는 편견을 깨주는 대목들이다.


면접장에서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요시모토 바나나'라고 대답하는 대목에선 배를 잡고 웃었다. 그랬던 저자가 김영하, 박민규, 무라카미 하루키, 에쿠니 가오리, 도스토예프스키, 카뮈 등의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해, 1년 후 다시 그 면접장에 섰을 때는 그럴 듯한 답변을 하는 모습에선 박수가 절로 나왔다. 영화 <동주>의 송몽규 역으로 캐스팅된 후 송몽규와 그가 살았던 시대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 영화 촬영 시작 전까지 몽땅 읽었다는 대목에선 마음이 뭉클했다. 송몽규가 남긴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직접 보고 싶어서 용정까지 다녀왔다는 대목도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맡은 배역을 최대한 완벽하게 이해해 관객에게 잘 소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불사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이런 배우라면 앞날을 기대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저자와 나는 공통점이 의외로 많았다. 출생연도는 다르지만 학번이 같고, 분당 야탑동에 살았던 것도 같다. 나는 고등학교 때 야탑동에 살고 대학교 때 서울로 이사했기 때문에 우연히라도 저자와 마주쳤을 가능성은 낮지만, 분당에 살았다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야탑동에 살았다는 사람은 많이 못 봐서 신기했다. 나이가 비슷하고 살았던 곳이 겹쳐셔인지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 추억도 닮은 구석이 많았다. 지금처럼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없던 시절에 극장에서 <쉬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도, 중학교 때 <상실의 시대>를 읽고 무슨 내용인지 이해를 못했다는 것도 같은 또래로서 크게 공감했다. 이 책을 내고 더는 책을 쓸 마음이 없다는데 부디 마음을 바꿔줬으면. <쓸 만한 인간 2>를 기대하는 독자가 나뿐만은 아니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