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뇌, 미래의 뇌
김대식 지음 / 해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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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아는 빅데이터가 주말에 볼 영화를 추천해주고, 음성만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내주는 시대다. 수많은 일들을 발전된 과학 기술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누가 나의 운명의 상대인지 등은 과학이 알려주지 못하고 대신해줄 수도 없다. 과학은 과거의 패턴을 분석해 결과를 도출하는 일만 할 수 있고, 과거의 패턴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일은 오로지 인간, 인간의 뇌에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김대식이 쓴 <당신의 뇌, 미래의 뇌>는 뇌의 구조와 기능을 통해 인간이 지각하고 인지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이로써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살아갈 방도를 모색하는 책이다. 이 책은 크게 '시각과 인지', '감정과 기억', '뇌과학의 미래' 이렇게 세 파트로 나뉜다. 뇌는 약 1.3~1.5 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신경세포 덩어리다. 뇌에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영역이 있고 비슷한 영역끼리 모여 있다. 뇌 자체는 감각하거나 인지하는 기능이 없다. 눈, 코, 입, 귀 등 감각 기관을 통해 받아들여진 정보가 신경 세포를 통해 전달되고 처리된다.


뇌를 연구하면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성을 많이 알 수 있다.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을 절단하는 분할 뇌 실험에 따르면, 인간은 선택을 먼저 하고 나서 그걸 보고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뇌는 세 살부터 다섯 살까지 비약적으로 발달한다. 이 시기에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것들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때는 수학, 논리, 인권 등을 배우면 좋다. 반대로 이 시기에 편파적인 이념이나 잘못된 고정관념을 배우면 평생 바로잡기 어려울 수 있다.


뇌를 연구하는 것은 과학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모라벡의 역설'에 따르면 인간한테 쉬운 행동들이 기계에는 어렵고, 반대로 기계에는 쉬운 행동들이 인간한테는 어렵다. 다섯 살짜리 아이도 추는 막춤을 인공지능 로봇이 추지 못하는 것만 봐도 인간의 미세한 움직임을 기계로 재현하기가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역으로 이는 인간 고유의 특성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이 과학 기술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사랑이다. 그동안 사랑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영화 <그녀(Her)>에서 볼 수 있듯이,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 인간과 인공지능이 사랑에 빠지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인간의 뇌는 호모 사피엔스 이후 바뀌지 않았다. 이는 수렵 채집 시대의 뇌를 가지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는 뜻이다.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종교 활동을 하고 미신을 믿고 점을 본다. 합리적인 추론과 분석보다는 찰나의 영감이나 관습에 의존한다. 저자는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진정한 신비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믿을 수 있는 '나'라는 존재'라고 말한다. (6쪽) 뇌과학으로 시작해 인간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는 데까지 이르는 보기 드문 명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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