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 - <고통을 달래는 순서>의 김경미 시인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일상의 풍경
김경미 지음 / 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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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키드였던 나는 지금도 곧잘 라디오를 듣는다. 관심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팟캐스트로 듣는 경우도 많다. 들을 거리가 많은 시대에 굳이 라디오를 찾아 듣는 이유를 대라면,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진행자가 마치 내 친구 같고 가족 같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늘처럼 사람 때문에 지치고 마음에 맞는 사람 만나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날에는, 직접 만나본 적 한 번 없는 라디오 진행자가 들려주는 말들이 오래 사귄 친구와 떠는 수다보다 큰 위로가 된다.


김경미 시인의 <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는 저자가 KBS 클래식 FM <김미숙의 가정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의 한 코너 <시간이 담고 있는 것들>을 위해 쓴 원고들을 모은 책이다. 시인이면서 오랫동안 방송 작가로 일해온 저자는 거의 매일 원고를 쓰고, 어떤 날에는 미리 녹음하는 방송을 위해 평소보다 두 배 많은 분량의 원고를 쓰는데도 글쓰기가 늘 어렵다고 토로한다. 정말로 오랫동안 해온, 너무나 익숙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글쓰기가 늘 어렵게 느껴지는 건, 글 한 편 한 편에 쏟는 애정과 노력이 남다르기 때문이란 걸 이 책을 읽으면 저절로 알 수 있다.


가장 좋았던 글 한 편을 꼽자면 <은행잎이 전하는 말>이라는 제목이 붙은 글이다. 어느 가을날,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노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길거리고 어디고 낙엽이 너무 많이 떨어져 있어서 지저분하고 위험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노인이 내리고 곧 다음 정거장에서 다른 노인 한 분이 탔다. 이 노인도 목소리가 유난히 컸는데, 그 큰 목소리로 꺼낸 말은 이랬다. 요즘 은행잎이 너무 멋지니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 때 실컷 봐두라고, 젊은 날엔 일도 중요하고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낙엽 쌓인 길을 걷는 게 더 좋은 추억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지혜를 우리 삶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루하루가 똑같다고,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불평하는 대신, 매일 무사히 삼 시 세끼 밥 먹고 아픈 곳 없이 지내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일하는 것도 힘들다고 괴로워하는 대신, 언젠가 더 이상 공부하지 않게 되고 일하지 않게 되는 시간을 떠올리며 지금 해야 할 일에 충실해 보는 건 어떨까. 사람 사귀기가 어렵고 마음에 맞는 사람 만나기가 너무 힘들다고 투정하는 대신, 지금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잘해주는 건 어떨까. 이거 전부 다 나 자신에게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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