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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 사회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위한 빈곤의 인류학
조문영 엮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평점 :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문영의 책. 저자는 대학에서 폐강이 될까 염려하며 '빈곤의 인류학'이라는 수업을 개설했다가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찾은 것을 보고 놀랐다. 수업을 찾은 학생들은 대개 두 종류의 빈곤에 관심이 많았다. 하나는 글로벌 빈곤이었고, 다른 하나는 청년 빈곤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들에게도 빈곤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해도 값비싼 등록금과 월세를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빈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음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감정적 빈곤, 여기에 실존의 빈곤, 마음의 빈곤까지 느끼고 있다고 많은 학생들이 호소했다.
저자는 수업에서 대다수 학생들의 관심사를 좇아 글로벌 빈곤과 청년 빈곤 문제를 오가던 중, 살짝 방향을 바꿔서 우리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빈곤 문제를 살펴보기로 했다. 반(反)빈곤 활동가들과 학생들의 만남을 주선해 한국 사회에서 가시화되지 못하고 점점 타자화되고 배제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저자는 복지 수급자, 홈리스, 철거민, 장애인, 영세 상인, 노점상, 쪽방촌과 저소득층 밀집 지역 주민과 함께 해온 반빈곤 활동가 10인을 선정해 '청년, 빈곤을 인터뷰하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학생들을 열 팀으로 나눠 활동가와 그가 속한 단체의 활동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한 뒤 저자와 동행하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프로젝트에 초빙된 반빈곤 활동가 10인의 면면은 이렇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논골신용협동조합 유영우, 난곡사랑의집 배지용, 관악사회복지 은빛사랑방 김순복, 동자동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선동수, 홈리스행동 이동현, 노들장애인야학 한명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최인기,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공기 등이다.
책을 읽으면서, 대학을 졸업한 지 십여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식이 대학생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고 여러 번 반성했다. 논골신용협동조합 유영우 이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학생들은 이렇게 물었다. "처음 주거권 투쟁을 벌일 때 '저 사람들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한 건데 왜 떼를 쓰느냐'는 다른 주민들의 반응도 있었다 들었습니다. 주거권을 모두의 '권리'로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유영우 이사장이 내놓은 답변의 요지는 이렇다. 한국 사회는 가난을 사회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하지만 실제로 가난은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 이런 식으로 매사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면 권리의식이 줄어든다. 주거권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누려야 할 권리'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지, 대통령이나 권력자가 아니다. 남의 권리가 박탈당할 때 나의 권리도 박탈당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함께 연대할 때 비로소 권리가 인정된다.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학생들은 또 이렇게 물었다. "젊은 세대들은 무임승차 문제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많이 기여하면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있기도 하고요. 실제로 그런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나요?" 이에 대해 유영우 이사장은 "무임승차? 요즘 애들이 협동조합하려면 힘들겠다, 참."이라며 웃은 후, '협동조합은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을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가치와 원칙을 이해해야 한다고 답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얼굴이 화끈거렸을 것 같다. 나의 권리에는 민감하면서 남의 권리에는 무관심했던 내가 한심해서, 나의 손익은 따지면서 공동체의 손익은 따지지 않았던 내가 부끄러워서. 이 밖에도 어깨를 죽비로 내리치듯 깨달음을 주는 대목이 많아서 두고두고 찬찬히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