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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띠지에 적힌 문장 그대로,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설레는 이름이 된' 정세랑 작가님의 첫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를 읽는 중이다. (지금 보니 띠지에 실린 사진 속 정세랑 작가님, 왠지 일본 배우 아야세 하루카와 닮은 듯 ㅎㅎㅎ) 전부 아홉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한 편씩 아껴 읽을 작정인데, 자꾸만 한 편 읽으면 다음 한 편을 더 읽고 싶고, 다다음 한 편 내용도 궁금해져서 미치겠다. 정세랑 작가님 소설을 열심히 읽고 있기는 하지만 다 읽은 것도 아니면서. 오늘 트위터에서 보니 정세랑 작가님의 2012년작 <지구에서 한아뿐>이 조만간 재출간될 예정이라는데 그 책 나오기 전까지 천천히 읽으면 될까.
맨처음에 실린 <웨딩드레스 44>는 한 벌의 웨딩드레스를 대여해 입은 44명의 신부들의 이야기를 이어붙인 구성의 소설이다. 어떤 신부는 남자 친구와 동거하다가 양가 부모들의 협박 비슷한 간청에 못이겨 식을 올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어떤 신부는 졸업도 하지 않았는데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자 쪽 집안이 서두르는 바람에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등이 이어진다.
흥미진진한 사연들을 매끄럽게 읽어가다가 이따금 과속방지턱에 걸린 것처럼 속도를 늦추게 되는 대목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신랑보다 한참 어린 신부에게 사람들이(아마도 신랑 쪽 집안 사람들이 아닐까) "어리고 깨끗하지."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라든가, 여자의 목에 새겨진 타투를 보고 남자가 비난을 했다는 대목이라든가, 남편과 같은 시험에 붙었는데 가족들이 여자 쪽에게만 '살살 다닐 직장'에 들어가라고 요구했다든가 하는 대목들. 아무리 남편이 좋아도 남편 쪽 집안 사람들이 잘해줘도, 결혼은 굴욕적이고 가부장제가 가하는 압박은 여성 한 사람이 극복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건 진작부터 알았지만 더 잘 알게 되었고, 이미 굳어있던 비혼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이어지는 <효진>은 한국의 2,30대 여성이라면 친구와 가볍게 할 법한 전화 통화를 그대로 옮겨 쓴 듯한 소설인데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다. 똑같은 자식인데도 아들은 귀하고 딸은 만만하고, 똑같이 나가 살아도 아들은 애틋하고 딸은 원망하는 한국의 부모들. 다행히 나는 남자 형제가 없어서 부모님에게 아들과 비교당하는 일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아들 없는 집의 딸, 그것도 장녀로 산다는 건 그 또한 고역스런 일이다(없는 오빠, 없는 남동생과 경쟁하는 기분이랄까). 집에선 딸이라서, 집 밖에선 여자라서 당하는 무시와 차별, 배제.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장한 걸까. 아님 독한 걸까. 씁쓸한 기분으로 다음 소설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