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봄-여름 2018 소설 보다
김봉곤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어제 오늘 나로서는 드물게 잠시 쉴 겨를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마침내 좀 쉴 수 있을까 했더니 이 책 리뷰를 안 쓴 게 떠올라서 부리나케 리뷰를 쓴다. (얼른 쓰고 넷플릭스에서 <그레이스 앤 프랭키> 보며 쉬고 싶다...!)


<소설 보다>는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새로운 이름이라고 한다.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소설 보다>의 기획과 판형, 디자인은 매우 마음에 든다. 작고 얇고 가벼워서 휴대하기 좋고 가독성도 그만이다. <소설 보다>는 분기마다 두 편의 소설을 선정해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권씩 책이 나온다. 작년 여름에 나온 <소설 보다 : 봄 여름 2018>에는 모두 네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 조남주의 <가출>, 김혜진의 <다른 기억>,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이다. 


이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은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이다. 주인공 '나'는 게이이며 소설가다. 어느 날 '나'는 대학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연락이 닿는다. 얼마 후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한창 연애하던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거리를 걸으며 과거를 회상한다. 헤어질 무렵 '나'는 어쩌면 예전 여자 친구와 잘 될 수도 있었다고, 어쩌면 둘의 사이를 예전처럼 돌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저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일 뿐이다. 사실 인생사가 대개 이렇지 않은가. 그 때로 돌아가면 다시 잘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절실히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그 가능성을 점쳐보고 혼자 미련 두고 마음 아파하는 심사는 대체 뭘까. 실은 나도 이런 심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요즘 가장 주목하고 있는 한국의 남성 작가가 김봉곤과 박상영인데, 두 작가 모두 첫 소설집이 불러일으킨 기대감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조남주의 <가출>도 좋았다. 전형적인 가부장인 칠십 대 아버지가 갑자기 집을 나간다. 이를 계기로 가족들이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모이고 안부도 나누고 같이 식사도 한다. 한때 널리 읽혔던 <엄마를 부탁해>의 성별 역전 버전인 셈이다. 아버지의 행방을 쫓는 가족들은 아버지의 카드 사용 내역을 알리는 문자가 올 때마다 열 일 다 제쳐두고 도시로 시골로 아버지를 찾으러 다닌다. 결말에서 가족들은 아버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가부장 없이도 가족 구성원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라고 해야할지 당연하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잘 읽히면서도 마음에 남는 것이 많은 소설이었다.


김혜진의 <다른 기억>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작별>에서 읽은 적이 있어 다시 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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