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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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가 위기라고 한다. 대학에선 문과 전공을 폐지하고 기업에선 문과 출신을 점점 더 뽑지 않으니 위기라는 말이 엄살이나 과장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직업은 경영 컨설턴트. 잘 나가는 경영 컨설턴트가 굳이 철학을 배우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야마구치 슈의 책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 따르면, 철학은 미국과 유럽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할 때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교양이다. 미국과 유럽의 엘리트 교육은 철학을 토대로 이뤄진다. 서양의 내로라하는 경영인들은 어려서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루소 등의 고전을 섭렵한다. 사회인이 된 후에는 비즈니스 스쿨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지식을 업데이트하고 토론을 즐긴다. 반면 일본의 경영인들은 철학에 무관심하다. 철학을 초등 또는 중등 교육 기관에서 필수 과목으로 배우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그것도 전공으로 택한 사람들만 배우니 당연하다. 철학을 '돈 안 되는 학문'으로만 여기는 일본의 경영인들이 미국 또는 유럽의 경영인들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벼운 비즈니스 토크는 가능하겠지만, 철학에 기반한 깊이 있는 사고의 소통과 공유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비즈니스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50가지 철학 사상을 소개한다. 니체의 '르상티망(ressentiment)'은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을 뜻한다.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개인은 대체로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복종하는 행태를 보인다. 르상티망을 비즈니스에 응용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명품 마케팅이 있다. 나만 빼고 주위 사람들 모두가 명품 가방을 가지고 있는 경우, 명품 가방이 없는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끼거나 명품 가방이 없는 내 처지에 열등감을 품을 수 있다. 이렇게 르상티망을 품게 된 나는 어떻게 해서든 명품 가방을 손에 넣으려고 애쓸 것이고, 점점 더 많은 명품 가방을 원하게 될 것이다. 르상티망을 느낄 때 보일 수  있는 또 다른 행태는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 자체를 뒤바꾸는 것이다.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허영 덩어리 또는 속물이라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심리의 기저에는 바로 이러한 감정과 의도가 숨겨져 있다.

에리히 프롬의 명저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으면 조직 관리에 유용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은 결코 자유를 좋아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이 따른다. 이 고독과 책임을 감당하면서 자유를 만끽할 자신이 있는 인간은 의외로 많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나치즘이다. 당시 독일의 수많은 소상인, 장인, 사무직 근로자들로 구성된 하층 및 중산계급이 스스로 자유를 내던지고 국가 권력에 예속되고 복종하길 바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4차 산업혁명 등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점차 늘리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사회에, '자유를 피하고 싶어 하는' 성향의 인간들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기업은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늘리는 방향이 아니라, 반대로 자유를 구속하고 선택지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가는 편이 매출을 ​높이는 데 더 유리할지 모른다.

이외에도 '돈 안 되는 학문'으로 유명한 철학을 '돈 되는 삶의 무기'로 달리 보게 만드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류 문명의 정수인 철학을 단지 비즈니스의 도구나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치게 피상적일 수 있겠으나, 철학과 나오면 굶어 죽는다고, 문과라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문과생으로서는 이러한 시도라도 절실하게 매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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