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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말들 - 엑소포니, 모어 바깥으로 떠나는 여행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돌베개 / 2018년 9월
평점 :

다와다 요코는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면서 현재는 독일에 살면서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작가다. 이처럼 모어 바깥으로 나간 상태 또는 모어가 아닌 언어로 쓴 문학을 '엑소포니(exophony)'라고 일컫는다. 이 책 <여행하는 말들>은 다와다 요코가 모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경험한 일들 또는 떠오른 생각들을 써내린 에세이집이다.
과거에는 모어가 아닌 외국어로 말하고 쓰는 것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행위로 여겨졌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들이 우리말을 빼앗기고 일본어로 말하고 쓰길 강요받은 것처럼, 모어 대신 다른 언어로 말하고 쓰는 삶은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역사적 또는 정치적 배경에 의해 억지로 택하게 된 것으로 흔히들 짐작했다. 이제는 다르다. 지금 시대는 사람들이 이동하는 것이 보통이다. 외국에 살면서 외국어로 소통하는 삶이 별스럽지 않다.
외국에 살지 않아도 외국어를 배우면 여러모로 유용하다. 외국어 공부는 새로운 자기를 만드는 일, 미지의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다. 대체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생각해선 안 되는 일, 입에 내서는 안 되는 일이 모국어로 설정되어 있다. 외국어로 글을 쓰면 모국어로 글을 쓸 때는 금기라고 생각했던 것을 과감하게 쓸 수 있다. 그렇게 계속 글을 쓰다 보면 또 다른 자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작가들이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글을 쓰다가 어린 시절이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거나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건 이 때문이다.
저자는 엑소포니를 대체로 좋게 보지만 '강요받은 엑소포니'에 대해서는 입장이 다르다. 저자는 2001년 3월 주한 독일문화원의 초청을 받아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열린 한 토론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박완서 작가에게 청중석에 있던 한 학생이 물었다. "영향을 받은 외국 작가는 누구인가요?" 박완서 작가는 도스토옙스키, 발자크를 필두로 유럽 작가 몇 명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일본문학은 전혀 읽지 않으셨나요?"라고 물었다. 박완서 작가의 답은 이러했다. "일본문학이 외국문학이라는 발상은 우리 세대에 없어요. 우리는 젊었을 때 일본어 읽기를 강요받고 한국어 읽기는 허용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도스토옙스키 같은 유럽문학도 전부 일본어 번역으로 읽었습니다."
지금은 한국문학과 일본문학의 경계가 너무나 명확하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문학과 일본문학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았다. 아니, 한국문학은 일본문학의 하위 분야로 여겨지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새삼 우리말과 한국문학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저자가 강조하는 외국어 공부의 효용 중 하나도 이것이다. 남의 것을 알아야 나의 것이 보이고, 남의 것을 배워야 나의 것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