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마리코 4
오자와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80세 할머니 마리코의 위풍당당 독립생활을 그린 만화 <80세 마리코> 4권이 국내에 정식 출간되었다.


80세의 작가 마리코는 남편과 사별한 후 아들 부부, 손자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코는 가족들이 자신에게는 비밀로 한 채 집을 리폼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이 가족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 가출을 감행한다. 인터넷 카페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마리코는 버림받은 고양이 쿠로를 줍게 되고, 쿠로와 함께 살 만한 집을 구하다가 젊은 시절 짝사랑했던 야오사카를 만나 동거를 시작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지난 3권에서 마리코 씨는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친구를 만났다. 야오사카 씨와 헤어진 후 인터넷 카페로 돌아간 마리코 씨는 점원에게 온라인 게임하는 방법을 배운다. 게임 속 세상에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노인은 없을 줄 알았는데, 게임 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용자의 실제 나이가 75세라는 걸 알게 되고 메시지를 보내 만날 약속을 잡는다.


그렇게 알게 된 치에조 씨는 평생 시골에서 살다가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딸이 사는 도쿄로 오게 된 사람이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딸밖에 없는 도쿄에서 할 일을 찾다가 온라인 게임을 알게 되었고, 하루 온종일 게임을 하다 보니 금방 고수가 되었다.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평생 헌신한 출판사에서도 거절당해 의기소침해 있던 마리코 씨는 치에조 씨를 보며 용기를 낸다. 노인의 약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마리코 씨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게임을 하는 치에조 씨를 보면서 젊은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다. 나이가 든다는 건, 가진 걸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체력도 잃고, 재능도 잃고, 트렌드를 파악하는 감도 잃고, 그러다 결국 작가로서의 가능성도 잃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잃는 만큼 얻는 것도 있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인정받는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헌신했던 시간들은 전부 자기 안에 있었다.


눈에 보이는 외모, 체형, 부, 명예만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과 능력, 지혜와 연륜이야말로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구성한다. 마리코 씨는 비록 집도 없고, 가족도 없고, 넉넉한 재산도 없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 시간과 80세까지 현역 작가로 활동하며 얻은 노하우, 인간으로서 얻은 지혜와 통찰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걸 비로소 자각한다.





이런 마리코 씨의 '각성'과는 별개로, 마리코 씨가 젊은 시절부터 오랫동안 작품을 연재해왔던 출판사는 마리코 씨와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통보해온다. 마리코 씨의 담당 편집자인 사이토 씨와 편집장 간의 갈등도 점점 심해진다. 나는 당연히 1권부터 줄곧 마리코 씨의 편을 들어왔던 사이토 씨를 응원하지만, 실제로 내가 편집장이라면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모를까) 80세가 넘은 고령의 작가에게 계속 일거리를 줄지 의문이다. 여성 작가가 8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 아닌가(우리나라로 치면 박완서, 박경리 작가님급). 이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전개 속에 이런 현실을 일깨워주는 점이 이 만화의 미덕이다.


마리코 씨가 가출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 이제까지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마리코 씨가 여태 현역으로 일하고 있고, 스스로 관리하는 돈이 있기 때문이다. 치에조 씨만 봐도 직업이 없고 스스로 관리하는 돈이 없으니 딸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나이 듦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나이들 것인지, 어떤 노인이 될 것인지 미리 생각해볼 수 있는 점도 이 만화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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