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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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면 출간 전 원고를 미리 읽고 모니터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도, 작품을 쓴 작가의 이름도 모르는 채로 원고를 읽은 건 '창비 눈가리고 책읽는당'이 유일하다. 단서는 오직 세 가지. '새인간, 작은날개, 영어덜트소설'이라는 것뿐. 새인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판타지 문학일 것 같고, 영어덜트소설이라는 단서로 보아 참신한 감각을 지닌 젊은 작가의 소설일 것 같은데 누구인지는 감히 짐작하지도 못했고,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며칠 전, 무심한 얼굴로 SNS를 보다가 구병모 작가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제목은 <버드 스트라이크>. 작가의 첫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가 나온 지 1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 오랜만에 쓴 환상 소설이라고 했다. 소식을 접하자마자 제목도 작가도 모른 채 읽은 원고가 떠올랐다. 작고 아름다운 날개를 지닌 익인(翼人) 소년 '비오'를 보고 <아가미>의 '곤'이 떠오른 건 내 섣부른 짐작이 아니었구나. 단단하고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이 그동안 구병모 작가가 그려온 여성들의 모습과 겹치는구나. 혹시나 했던 예상이 맞아떨어져 기쁜 한편으로 마음이 들떴다. 구병모 작가의 신작이라니! 그것도 판. 타. 지라니!


<버드 스트라이크>는 날개를 가진 익인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가 배경이다. 말이 '공존'이지, 익인이 인간에게 당하는 취급은 형편없다. 인간들은 도시를 만들면서 익인들을 도시 바깥으로 내쫓았고, 감미나 우리온의 가죽을 비롯해 미과나 은각안 같은 수많은 진귀한 것들을 통상조약이라느니 보호해준다느니 하는 명목으로 헐값에 거둬갔다. 익인들의 문화와 관습을 무시하고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는 학교와 수도 시설을 놓고, 자기네 공산품이라면서 익인들이 원한 적 없는 물건들을 잔뜩 가져다 안기는 대신 세금을 뜯어내는 일도 왕왕 있다.


비오는 작은 날개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익인 가운데에서도 차별을 받는 소년이다. 어느 날 고원 지대의 익인들이 도시까지 날아가 시청사 건물을 습격하는 일을 벌였고, 비오는 이들과 함께 갔다가 인간들에게 붙잡혀 청사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루는 엄마를 따라 청사에 와서 살고 있는 인간 소녀다. 루의 어머니 아마라는 이전 시행의 수행비서이자 내연녀다. 아마라는 고향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아버지에게 루를 맡겼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강제로 루를 시청에 데려왔다. 어머니도, 도시 생활도 익숙지 않은 루는 비오의 난데없는 등장이 반가웠고, 비오는 루를 인질로 삼아 청사 밖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비오를 따라 익인들의 거주지로 온 루는 비오 또한 녹록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루의 눈에는 비오나 다른 익인들이나 똑같은 익인으로 보이는데, 익인들은 비오의 작은 날개를 핑계로 비오를 차별하고 배제한다. 이런 와중에 익인들과 인간들 사이의 갈등은 점점 더 커져간다. 익인들은 이성과 논리를 버린 시위부터 하기로, 무조건 외치고 몸부터 던지기로 한다. 인간들은 군인과 경비병을 내보내 익인들을 무자비하게 진입하려 든다. 이들 사이에 놓인 어린 소년, 소녀의 운명은 대체 어떻게 될까.


루와 비오는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들이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더 많이 헤아렸다. 서로를 만난 후로는 자신들이 가진 것에 감사하며 서로를 지키는 일에만 집중한다. 네가 걷지 못할 때는 내가 안아서 같이 날면 된다. 네가 날지 못할 때는 내가 곁을 지켜주면 된다. '날개 따위 신경 끄렴. 그냥 그대로, 꼭 안아 주면 돼.' 비오는 루를 만나고 나서야 어릴 적 아버지가 남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뭐든 간에 자신이 가진 것을 주면 된다던 아버지의 말을 그제야 납득하게 된다.


<위저드 베이커리>를 처음 만났던 10년 전에 비해 구병모 작가의 세계는 훨씬 예리하고 단단해졌다. 환상을 가미한 문학이라는 이유로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고, 이런 현실이 순조롭게 나아질 거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의 자리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의 힘을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그것이 뭐든 간에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내어주는 일. 지치면 손 내밀고, 지친 사람이 있으면 손잡아 주는 일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러다 보면 날지 못하는 인간이 나는 일도 가능해진다고, 그렇게 작지만 분명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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