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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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었다. 차갑게 굳은 시체와 사건 현장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단서만 가지고 사건 당시 상황은 물론 범인까지 완벽하게 추리해내는 법의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희열과 존경심을 느꼈다.


나처럼 CSI 시리즈의 팬이었거나 법의학자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책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을 쓴 유성호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이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을 겸임하고 있다. 저자는 20년간 1500여 건의 부검을 담당했으며, 세월호 등 주요 사건 및 범죄 관련 부검의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의학자 수는 정확히 40명이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전체 의사 수가 2017년 통계 기준 12만 1571명인 걸 감안하면 현저히 적다. 법의학자들은 학회에 참석할 때 절대로 한 버스나 비행기에 타지 않고 따로 움직인다.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해 한꺼번에 죽는 일이 발생하면 우리나라 법의학자가 전멸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농담이 포함된 진담이다.


이 책은 저자가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서 맡고 있는 '죽음의 과학적 이해'라는 교양 강의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2013년에 정원 60명으로 시작한 이 강의는 현재 정원 210명의 대형 강의로 발전했다. 저자의 강의는 일부 학생들이 관심 있어 하는 범죄를 포함해 죽음의 사회적 현상과 죽음을 유발하는 손상이나 질병, 죽음 후의 신체 변화 등은 물론, 죽음의 역사적 맥락 및 인식의 변화, 현재 사회 병리학적 현상으로 여겨지는 자살, 의료 분쟁, 보험 사고 등의 문제를 총망라한다. 이 책은 이 중에서 법의학의 정의와 역할, 법의학이 풀어낸 범죄 사건, 죽음과 자살 등의 문제를 다룬다.


저자는 이 책에서 법의학이 밝혀낸 억울한 죽음의 사례를 소개한다. 그중에는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경우도 있고, 남편에게 심하게 맞아 죽은 아내의 경우도 있다. 저자는 직업이 법의학자이다 보니 보통 사람들보다 비교적 담담히 죽음을 직시하는 편이지만, 각각의 죽음이 늘 다르게 가슴을 울린다고 말한다. 개인의 처참한 불행으로 인한 죽음을 보면 슬픔이 차오르기도 하고, 우리 사회가 야기한 비극으로 인해 발생한 죽음을 보면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점점 심각해지는 자살 문제도 언급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8만 여명이 사망하는데, 이중 타살은 500여 명 정도로 10만 명당 1명이 안 되는 반면, 자살은 12,000여 명 정도로 10만 명당 24명이 넘는다. 저자는 자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쉬쉬하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숨겨진 자살 사례가 더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죽음을 목도한 법의학자로서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의견도 허심탄회하게 들려준다. 저자는 이미 아내와 함께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혀놓았고, 죽기 전까지 해야 할 일들을 버킷리스트로 만들었다. 장례식장에서 검안을 하면서 삼베로 된 수의를 볼 때마다 '살아생전 한 번도 안 입어본 옷을 왜 죽은 사람에게 입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은 결혼할 때 아내가 마련해준 예복을 입혀달라고 자식들에게 이야기했다.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는 저자의 메시지가 묵직하게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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