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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뺀 세상의 전부 - 김소연 산문집
김소연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1월
평점 :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말과 글을 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길이나 잠들기 전 어김없이 책 한 권을 손에 드는 건, 상대방에 대한 배려 따위 없는 무성의한 말, 일단 그냥 싸질러보자는 심산으로 쓴 게 분명한 글로 인해 지치고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행여라도 누가 읽고 마음에 상처 입을까 봐 쓰기 전에 몇 번은 고심한 흔적이 느껴지는 단어, 깔끔하게 정리되고 단정하게 가다듬어진 문장을 읽으면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릿속이 말끔하다.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 <나를 뺀 세상의 전부>에 담긴 단어와 문장들은 하나같이 정갈하다. 저자는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의 주장보다 그 사람의 하루를 지켜보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에 더 크게 설득되고 더 큰 경이감이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도 기존의 산문집과 다르게 되도록 생각한 바와 주장하는 바를 쓰지 않고 다만 자신이 직접 만났거나 겪었던 일들만을 담고자 했다.
그리하여 이 책에 담긴 삶의 단편들은 소소하되 사소하지 않다. 기타가 가지고 싶다고 지나가듯 던진 말에, 음악하는 친구가 집에 남는 기타가 있다며 선물로 준다. 당장 아무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데 생각이 나지 않아 즉흥 자작곡을 짓는다. 친구가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걸어서 둘러본다. 둘이서 삼인 분의 김밥을 사들고 근처 어린이 공원 벚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맛있다는 말을 거푸 내뱉으며 김밥을 먹는다. 엄마와 마주 앉아 김장을 담근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세간을 정리하고 비로소 한가해진 엄마는 '이렇게 살고 있으니 아가씨가 된 거 같다'며 웃는다.
그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보았고, 누구를 만났고, 어떻게 되었다고 적었을 뿐인데도 저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명확하게 보이는 듯하다. '나를 뺀 세상의 전부', '내가 만난 모든 접촉면'이 '내가 받은 영향이며, 나의 입장이자 나의 사유'라는 저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를 뺀 세상의 전부는 어떤 모습일까. 나를 뺀 세상의 전부가 보여주는 내 모습은 어떨까. 마르그리트 뒤라스처럼 "이게 다예요."라고 말할 용기가 아직 내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