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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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에 이어 2년 만에 선보인 최은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아무리 잘 쓰는 소설가도 여러 중단편을 묶은 소설집을 내놓으면 그중 몇 편은 덜 좋기 마련인데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은, <쇼코의 미소>도 그렇고 <내게 무해한 사람>도 그렇고, 실려 있는 작품이 하나같이 좋다. 약간이라도 덜 좋은 작품이 없다. (대체 어떻게 이래. 인생 2회차인가...)


이 책에는 <그 여름>, <601, 602>, <지나가는 밤>, <모래로 지은 집>, <고백>, <손길>, <아치디에서> 이렇게 일곱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작품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대목이 있다. 가령 <그 여름>은 지방 소도시에서 처음 만나 열렬하게 사랑을 나누었던 레즈비언 커플이 각각 대학 진학과 취업을 계기로 상경해 서서히 멀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작품의 화자는 지방 소도시 출신이며 레즈비언인 자신이 의심할 여지없는 소수자라고 여겼으나, 자신과 달리 대학 졸업장도 없고 험한 일을 하는 애인에게 점점 덜 끌리는 것을 느끼며 자신이 이 관계를 파괴하고 애인에게 해를 입히는 가해자임을 자각하고 괴로워한다. <601, 602>의 화자 역시 억압적인 가부장제에 시달리는 친구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정작 자신이 하는 일은 친구를 동정하는 것일 뿐이고 실제로 친구를 돕거나 구하지 않음을 깨닫고 자괴감에 빠진다.


작가는 후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오래도록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작가만 그랬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를 타인으로부터 상처받기만 할 뿐, 타인에게 상처 준 일은 없는 순결한 존재라고 굳게 믿기도 한다. 그런 믿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실상 인간은 잉태된 순간부터 어머니의 육체에 해를 끼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생명들)의 안녕과 평화를 해치며 살다 죽는다. 그것이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건 그대로 누군가가 입은 피해와 불편을 방조한 것과 다름없게 되고 가해자나 마찬가지가 된다.


산다는 건 정녕 피해자가 되거나 가해자가 되거나,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일일까. 상처받기도 싫고 상처 주기도 싫은 사람은 삶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을까. 작가가 이 책에서 분명한 답을 주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의 제목인 '내게 무해한 사람'이 <고백>에 나오는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라는 문장에서 따왔다는 사실이 어쩌면 답일 수 있을 것 같다. 나부터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을 아끼는 마음. 그런 마음이 모이고 또 모이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덜 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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