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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 망국의 신하에서 일본 경제의 전설이 되기까지
시부사와 에이이치 지음, 박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일본 메이지 시대의 저명한 경제인이자 기업가인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어린 시절부터 가 일본 경제의 거물이 되기까지의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원전은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구술을 받아 적은 책 <비 오는 날 밤의 이야기 -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자서전(雨夜譚 渋沢栄一自伝)>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에도 막부 말기였던 1840년에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가신이 된 시부사와는 1867년 요시노부의 명을 받아 파리 만국 박람회를 시찰하게 된다. 시부사와는 이를 계기로 유럽의 자본주의와 기업 경영의 중요성에 눈 뜨게 된다. 막부가 멸망한 후 일본에 귀국한 시부사와는, 막부의 가신이라도 유능한 인재는 널리 등용한다는 신 정부의 방침에 따라 대장성 재무 담당으로 발탁된다. 이후 시부사와는 4년간 경제 관료로 일하며 신 정부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퇴직 후에는 잘 알려진 대로 기업 경영에 투신해 일본 경제를 이끄는 거물로 성장한다.
이제 막 출범한 신 정부이기는 해도 대장성 재무 담당 관료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자리인데 취임한 지 4년 만에 사의를 표하고 자리에서 내려온 이유가 흥미롭다. 당시 일본은 왕정 유신이라며 그 이름은 실로 아름다운 듯하지만 실은 폐번치현 후 정치가 조금도 정돈되어 있지 않아 국가는 피폐하고 민생은 열악하다. 이런 때에 '외국에서 일을 만들어 전쟁을 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그러니 자신은 정계에서 빠져나와 상공업 부흥에 힘쓰겠다는 것인데, 지금에 와서 보면 상당히 현명한 처사로 보이지만 당시로선 신 정부에 충성하기를 거부하는 몸짓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생애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인 실업가 시절 직전에서 책이 끝난 것은 아쉽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시부사와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일본 역사와 경제에 관한 나의 지식이 높지 않아 서울대학교 박훈 교수의 상세한 설명과 유려한 번역 덕을 많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