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작별의 '작' 자는 '지을 작(作)' 자를 쓴다. 작별이란 헤어짐을 짓는 일, 떠남을 만드는 일인 것이다. 올해 나는 가슴 아픈 작별을 당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십 년 넘게 사귄 친구가 지난 여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병이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기에 나는 내심 내가 친구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작별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준비 못 한 이별이 슬프고 당황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원치 않는 작별을 당한 일이 서운하고 분했다. 나는 친구에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였나 싶었다.


제12회 김유정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한강의 <작별>을 읽으며, 나는 작별 당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닌 작별하는 사람의 마음을 상상했다. 이 소설에는 어느 날 갑자기 눈사람이 되어버린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눈사람이 된 여성은 차갑게 얼어붙었다가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자신의 몸보다도, 자신이 녹아내린 후 세상에 남게 될 사람들을 걱정한다. 키는 엄마보다 한참 크지만 속은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인 채인 아들, 성실한 성격이 뭇사람에게는 미욱함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어린 애인의 남은 날들을 염려한다. 작가는 눈사람이 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지 않았으나 나는 이것이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택한 작별 혹은 죽음의 은유로 여겨졌다. 남는 사람은 떠나는 사람을 가엾게 여기지만, 떠나는 사람은 남는 사람이 안타깝다. 남는 사람은 작별 당하는 상황 자체를 원망하지만, 떠나는 사람은 작별 후에 닥칠 일들을 걱정한다. 사별의 경우, 작별의 후유증은 오로지 남는 사람이 지게 될 몫이기에 떠나는 사람의 마음은 결코 편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별하는 마음이란 얼마나 처절하고 긴박한 상태인 건지, 나는 영영 알 수 없을 것 같다.


수상집에 함께 실린 다른 작품들은 이별보다도 우리가 작별을 온전히 경험하고 납득할 수 없게 만드는 한국 사회의 문화 또는 관습을 집요하게 묘사하는 내용이 많다. 강화길의 <손>에는 도시에서 살다가 남편이 외국에 단신 부임을 하러 가는 바람에 시골 시댁에서 살게 된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교사인 그는 시골 학교의 교사로 새로 부임하게 되는데, 순진하게만 보였던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점차 곱지 않아진다. 그는 어린 딸 하나만이라도 지켜보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권여선의 <희박한 마음>에는 층간 소음 때문에 고생하는 노년의 여성이 나온다. 그는 소음이 들릴 때마다 과거의 기억이 소환되고, 과거의 기억이 소환될 때마다 유쾌하지 않은 추억 때문에 쓴웃음을 짓는다. 어린 여자에게 가혹했던 세상은 늙은 여자에게도 가혹하다. 김혜진의 <동네 사람>에는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레즈비언 커플이 마을 공동체에서 점점 배제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파트너가 폐지 줍는 할머니와 엮이면서 벌어진 일이 마을 전체에 퍼지면서 커플은 이 마을에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물러갈 곳도 없기에 두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정이현의 <언니>에는 스스로에게는 가차 없었으나 화자에게 더없이 착하고 친절했던 '구인회'라는 여성이 나온다. 남자 아이들이 어떻게 보든 앞머리를 까올리고 뒷머리는 질끈 묶은 채로 열심히 공부했던 언니, 중국에서 살다온 사람보다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만큼 전공 공부에 최선을 다했던 언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모두 해냈던 언니를 세상은 알아주지 않았다. 알아주기는커녕 가차없이 이용하고 미련없이 버렸다. 지난 여름 세상을 떠난 나의 친구도 어쩌면 비슷한 일을 당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창 중에 가장 먼저 취업에 성공하고 서른이 되기 전에 집 한 채를 마련할 만큼 악착 같이 살았던 친구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건, 스스로 가족과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작별을 하기로 마음먹게 된 건 어쩌면 친구 자신이 쓰디쓴 작별을 당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어떤 사람이나 조직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부터.


더는 작별 당하고 싶지 않고 스스로 작별하고 싶어질 일도 겪고 싶지 않다. 새해에는 누구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작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다. 뒤늦게나마 보듬어주고 싶고 끌어 안아주고 싶다. 그러면 내가 겪은 작별이 덜 서운해질까. 네가 고해야 했던 작별이 덜 고통스러워질까. 눈이 되어 내린다면 눈사람으로라도 다시 만나고 싶다. 아니, 눈사람이 되면 다시 녹을 테니, 더는 녹지 않게 공기가 되렴. 나도 네가 더는 외롭거나 힘들지 않도록, 공기처럼 어디에든 있도록 할게.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게. 더는 작별하지 않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