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의 밤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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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주민등록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르는 사람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매일 밤 잠자리에서, 물론 매일 밤은 아니지만 자주 반복되는 생각이었다. 

사라질 생각은 없지만, 큰 잘못을 아직 저지르지 않았지만 어떻게 한국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숨을 수 있을까 혹은 한국을 빠져나가 외국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출판사 아르테(Arte)에서 야심 차게 내놓은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의 첫 책. 올해로 등단 10년을 맞은 박솔뫼 작가의 여덟 번째 작품집이다. ​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 한솔은 일본에 살고 있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에 가는 중이고, 나미는 이모가 알려준 이모 친구 집에 잠깐 살러 가는 길이다. 두 사람은 남으로 남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과거로 과거로 침잠한다. 몇 해 전 남성이 된 한솔은 수술 한 번이면 성별을 바꿀 수 있는 세상인데 왜 여전히 자신의 주민등록번호 뒷번호는 2로 시작하는지, 외국에 나갈 때마다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사유를 설명해야 하는지 답답하다. 사이비 교단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나미는 학력도 없고, 직업 교육도 받지 않은 자신이 어떻게 이 나라에서 살아갈지 막막하기만 하다. ​ 


부산에 도착한 한솔과 나미는 일본으로 향하는 배를 바라보며 이곳에서 사라져 저곳에서 머무르는 삶을 상상한다. 어차피 여기서는 혼자 힘으로 살기 어렵고, 의지할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원해서 택한 것이 아닌 과거가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반 시민, 보편 시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일등 시민이 되지 못하고 이등 시민조차 되기 힘들 것이다. 


과연 이 둘은 무사히 사라질 수 있을까. 사라져 다시 나타난 곳에서는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소속되어 있으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머물러 있으나 곧 떠나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으로서 한솔과 나미의 상황이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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