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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1984년에 발표한 자전 소설이다. 동명 영화의 이미지 때문에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프랑스인 소녀와 나이 든 중국인 남자의 진한 로맨스를 그린 소설인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부재한 아버지와 큰 오빠만 편애하는 어머니, 폭력적인 큰 오빠, 나약한 작은 오빠로 인해 외롭고 고통스러운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전부 베트남으로 데려간 후 세상을 떠났다. 소녀의 어머니는 혼자 힘으로 세 아이를 키워야 했기에 늘 돈에 쪼들렸다. 어머니는 장남이 공부를 잘해서 집안의 기둥이 되기를 기대했으나, 장남은 마약과 노름에 빠져 공부는 뒷전이고 허구한 날 동생들을 괴롭혔다. 두 아들 모두 별 볼 일 없는 자식임이 드러나자, 이제 어머니는 막내인 딸에게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이지만 성숙한 미를 뽐내고 학교 성적도 우수한 딸이 어떻게든 집안을 일으키길 바란다. 그런 기대를 알 정도로 조숙한 소녀는 어느 날 메콩강을 건너는 배 위에서 부유한 중국인 남자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정신없이 사랑에 빠지고 시도 때도 없이 몸을 탐한다. 소녀의 가족은 소녀가 방과 후에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누구에게 돈을 얻어오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체한다. 소녀의 가족들에게 중요한 건 소녀가 아니라 소녀가 가져오는 돈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남자를 가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구실 또는 계기로 삼(을 수밖에 없)는 여자들이 떠올랐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어머니가 그랬다. 어머니의 부모는 아들들은 대학에 보냈지만 딸들은 대학에 보내지 않았다.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택한 딸이 벌어온 돈을 고스란히 가져가 생활비로 챙겼고 딸이 결혼할 때 한 푼도 보태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부모가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부려먹고 욕하고 때리는 것이 싫어서,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남자를 만나 결혼을 감행했다. 다행히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고 삼십 년 넘게 잘 살고 있지만, 이따금 어머니는 어린 날의 자신이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남자 이외의 선택지를 고려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어머니를 둔 내게 이 소설은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닌 일종의 페미니즘 문학으로도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