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
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 정지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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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여러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할아버지뻘인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언론사 사주의 손녀, 대낮에 골프장에서 성행위를 하는 동영상이 유출된 증권사 부사장, 부모가 사기 혐의로 인터폴 수배 중인 래퍼, 재벌가 4세와 결혼을 발표한 아나운서 등의 이름이 누리꾼들의 클릭질을 부추기고 있다.


나 역시 인간인지라 실검 순위를 보면 클릭하게 되고, 클릭하면 이 기사 저 기사 읽어보게 된다. 그런데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열 일 다 제쳐두고 골몰할 만한 일일까. 물론 이 중에는 사회적 공분을 사기에 마땅한 사건도 있지만, 그 밖에 연예인 누구가 누구와 사귀고, 재벌 누구가 누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가 대관절 나와 무슨 상관일까. 중요하지도 않고 상관도 없는데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대체 왜 이런 일에 관심을 보이고 분노를 느끼고 악플을 다는 걸까. 


일본의 심리학자 에노모토 히로아키의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인터넷상에서 잘못을 했거나 잘못했을 거라고 일방적으로 판단한 인물을 타깃으로 삼아 철저하게 비난을 퍼붓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분석한 책이다.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일본 사례가 대다수이지만 한국인 독자도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이를테면 이런 사례가 있다. 2017년, 일본의 인기 배우 이치카와 에비조의 아내 고바야시 마야가 34세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5일 후, 이치카와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디즈니랜드에 갔다는 이유로 트위터에서 뭇매를 맞았다. 상중에 디즈니랜드에 간다는 게 일반 상식과는 어긋날 수 있지만, 어머니를 잃은 어린 자녀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자신의 상식만 고집했고, 그로 인해 이치카와와 어린 자녀들은 예상치 못한 '2차 피해'를 입었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공감력 부족, 감정 제어 장애, 분노, 욕구불만, 승인 욕구, 감정 노동, 자아 효능감 추구, 샤덴프로이데(독일어로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뜻한다), 승자와 패자라는 이분법, 수치심과 부러움 등의 용어를 사용해 설명한다. 이유는 다양해도 본질은 하나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사실 정의나 올바름이 아니다. 이들은 그저 자신의 방식을 밀어붙여서 자기가 옳다는 걸 확인하고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연예인의 불륜 스캔들을 보면서 "저게 사람이 할 짓이야?"라고 나무라는 사람은, 말로만 피해자를 걱정할 뿐 실제로는 '불륜하는 사람들'을 깎아내림으로써 '불륜하지 않는 나'를 높이고 싶을 뿐이다. 저자는 인터넷상은 물론 일상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비난하며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가는 친구나 직장 동료, 의문을 던지거나 부탁을 거절하면 화부터 내는 직장 상사,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이상하고 묘하게 기분 나빴던 사람들 대다수는 이치와 정의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감정이 뒤틀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이런 사람들을 먼저 알아보고 피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친해지면 극단적으로 스스럼없이 대하는 사람, 남이 성공하면 침울해 하는 사람, 잘난 사람을 끌어내리는 사람 등이 대표적이다. 책에 구체적인 해결책이나 대응 전략이 없는 걸 보면 이런 사람들은 쉽게 고칠 수 없으니 피하는 게 상책인 것 같다. 부디 정의를 밀어붙이는 가짜 영웅들 때문에 다치지 말고 상처 입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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