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는 여자들
리비 페이지 지음, 박성혜 옮김 / 구픽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이제까지 수영 하면 코끝을 찡하게 울리는 염소 표백제 냄새와 수영을 마친 후 매점에서 사 먹는 컵라면 냄새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앞으로는 런던의 야외 수영장 리도(lido)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들을 그린 리비 페이지의 소설 <수영하는 여자들>이 떠오를 것 같다. 


주인공은 대학원 졸업 후 런던의 한 지역 신문사에서 실종된 개나 고양이를 찾는 기사를 쓰며 밥벌이를 하고 있는 스물여섯 살 여성 케이트. 고향과 가족의 품을 떠나 런던으로 온 이후로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던 케이트는 어느 날 자신이 살고 있는 브릭스턴 지역의 공공시설인 야외 수영장 '리도'가 폐쇄되고 그 자리에 대기업 계열의 회원제 스포츠 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걸 알게 된다. 


상사 필은 케이트에게 리도에 관한 기획기사를 쓰라고 지시하고, 리도에서 케이트는 여든여섯 살의 로즈메리를 만난다. 평생을 브릭스턴에서 살았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리도에서 수영을 해왔다는 로즈메리는 케이트에게 리도에서 수영을 하면 기사 쓰는 걸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기사다운 기사를 쓰게 되었다는 생각에 들떠있던 케이트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승낙한다. 그날 이후로 케이트는 매일 아침 리도에서 수영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기사를 쓰기 위해 로즈메리와 만나면서 케이트는 자연스럽게 로즈메리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동안 자신이 외면해 왔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기사가 화제를 모으고 리도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케이트는 런던에 온 지 몇 년 만에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소설을 읽고 나서 에이미 애덤스와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영화 <줄리 앤 줄리아>가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 두 여성의 우정을 다룬다. 두 작품 모두 나이가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람끼리도 관심사가 같고(<줄리 앤 줄리아>에선 요리) 열정이 비슷하면 누구보다 가깝고 서로를 잘 이해하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 아니며, 여성은 여성에게 좋은 자극을 줄 수 있고 서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 


나아가 이 작품은 소소한 일상을 영위하는 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역설한다. 런던에 온 이후로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내내 기가 죽어 있었던 케이트는 수영을 하면서 오랜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고 너무 늦지 않은 시각에 잠드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인스턴트 음식을 사 먹는 대신 신선한 재료를 구입해 직접 요리를 하고, 심드렁한 얼굴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대신 동네 책방에서 손수 고른 책들을 읽으며 여가 시간을 보낸다. 


작지만 단단한 일상은 마침내 케이트의 무채색 인생을 총천연색으로 바꾼다. 그 모든 건 수영과 리도, 그리고 로즈메리 덕분이라는 건 두 말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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