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읽는 남자 - 삐딱한 사회학자, 은밀하게 마트를 누비다
외른 회프너 지음, 염정용 옮김 / 파우제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당신이 산 것을 말해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줄게요."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이 사람의 이름은 외른 회프너. 대학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조형예술대학에서 이동성, 사회, 미래에 관한 테마를 연구하고 있는 사회학자다. 그의 책 <카트 읽는 남자>는 연령, 성별, 수입, 학력, 혼인 관계, 주거 상황 같은 간단하고 측정 가능한 자료들을 이용한 통계 분석 자료의 한계를 지적한다. 나아가 개인의 소비 성향을 통해 훨씬 더 정확하게 사회의 상태와 변화를 포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에 따르면 한 사회의 구성원은 크게 10가지 그룹으로 나뉜다. 일과 여가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민 중산층', 한계나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창의적인 '디지털 원주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사회생태적 환경주의자', 주도권을 쥐고 사회의 가치를 수호하려는 '보수적 기득권층', 성공, 진정성,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진보적 지식인층', 융화와 사회적 안정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순응적 실용주의자', 절약, 겸손, 의무 이행을 충실히 따르는 '전통주의자', 스타일과 생활 태도에서 남보다 앞서 나가려는 '성과주의자', 자기중심적이고 즐거움과 체험을 중시하는 '쾌락주의자', 일상의 활동에 대한 자기 참여 지분을 확보하려는 '불안정층' 등이다. 


어떤 사람이 어느 그룹에 해당하는지 알고 싶으면 슈퍼마켓 카트를 들여다보는 것만큼 정확한 방법이 없다. 물론 설문조사나 서베이를 통해서도 알아낼 수 있지만, 말로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사회생태적 환경주의자라고 주장하면서 막상 슈퍼마켓에 가면 값비싼 친환경 제품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저렴한 대기업 제품만 구입하는 사람이(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있는 까닭에 저자는 획일적인 설문조사보다 실제적인 관찰을 중시한다. 


'고작' 슈퍼마켓 카트 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한 사람을 전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처음엔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의 주장에 설득되었다. 퇴근 후 동네 인근의 펍에서 수제 크래프트 맥주를 마시는 사람과 편의점에서 파는 만 원에 네 개짜리 맥주를 사서 마시는 사람,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꼬박꼬박 김장을 하는 사람과 브랜드 김치를 주문해서 먹는 사람, 손수 만두속과 만두피를 만들어서 만두를 빚어먹는 사람과 새로 나온 냉동만두 제품을 줄줄 꿰고 있는 사람은 소비 성향과 라이프 스타일은 물론 인생관과 정치 성향, 경제 사정 등이 결코 같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과연 나는 어느 그룹에 해당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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