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올 여성들에게 - 페미니즘 경제학을 연 선구자, 여성의 일을 말하다
마이라 스트로버 지음, 제현주 옮김 / 동녘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미국의 노동계급 출신 여성이 편견과 차별을 깨고 한 사람의 교수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책이라는 점에서, 마이라 스트로버의 <뒤에 올 여성들에게>는 호프 자런의 책 <랩 걸>에 비견할 만하다. 


차이가 있다면 조교수 임용을 앞두고 성차별의 현실과 뼈아프게 맞닥뜨린 저자가, 그에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페미니즘을 학습하고 '페미니즘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할 만큼 용감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호프 자런도 훌륭한 페미니스트이지만, 마이라 스트로버는 그 자신이 페미니스트인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성차별의 현실을 인식하고 극복하게끔 했다는 점에서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은 일종의 회고록이다. 1940년 미국 동부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저자는 영리하고 꿈 많은 소녀였다. 저자는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지만, 노동계급 출신이고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저자의 부모는 딸이 하루빨리 취업을 하거나 교원 자격증을 취득해 교사가 되기를 바랐다. 저자가 성차별을 경험한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그 자신이 그것을 '성차별'이라고 인식한 것은 조교수 임용을 앞둔 어느 날이다.


남편이 있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교수 임용이 거절되었을 때, 저자는 더 이상 차별의 현실을 개인의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여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자는 곧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페미니즘 서적을 탐독하고, 버클리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여성과 노동'이라는 강좌를 개설했으며, 스탠퍼드대학교 경영 대학원 사상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다. 성별에 따른 직업 분리, 가사 노동의 가치 정량화, 차별의 비용 등 새로운 개념을 정립해 '페미니즘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제학 분야를 확립했다. 


저자가 경제학자로 이룬 성취는 저자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맞닥뜨려야 했던 차별과 혐오의 경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저자를 끔찍이 예뻐했던 할아버지는 '원래 그런 것'이라며 여자인 저자를 예배당에서 내쫓았다. 저자에게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가르쳤던 부모님은 저자가 집에서 가까운 공립 대학에 진학하길 바랐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길 바랐고, 교원 자격증을 취득해 교사가 되길 바랐다. 교사가 아니라 교수가 될 수도 있다며 학업을 독려했던 남편은 집안일을 분담하자는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저자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말하면서, 남성과 여성은 동일한 권리를 지닌다고 말하면서, 어째서 수많은 가정에서 아들과 딸을 차별하고, 남학생과 여학생이 다른 교육을 받고 다른 직업을 가지며,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직업을 가진 남성과 여성 간에도 차별이 반복되는지 묻는다. 저자와 나는 국적도 다르고 나이도 한참 차이가 나는데 어쩌면 이렇게 비슷한 경험을 했을까. 페미니즘을 단지 알고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 적용하고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한 - 그리고 성공한 - 참 멋진 선배를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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