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진가
모데라타 폰테 지음, 양은미 옮김 / 문학세계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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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라타 폰테는 16세기 베네치아의 시인이자 작가다. 폰테가 태어난 건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를 계승하기 3일 전, 셰익스피어와 말로가 태어나기 9일 전이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수녀원과 외할머니 집에서 성장한 폰테는 일찍이 탁월한 명석함으로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일찍부터 글을 썼고 1981년 26세가 되던 해에는 첫 책 <플로리도로>를 출판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급격히 생산력이 저하되었고, 이 책을 끝으로 1592년 서른일곱의 나이에 네 번째 아이를 분만하던 중에 사망했다. 


이 책 <여성의 진가>는 1980년대 전까지 사실상 읽히지도 않고 알려지지도 않았다. 이 책은 알려지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전 세계에서 출판되고, 연극으로 만들어져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 상연되었다. 이 책이 그토록 단기간 내에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은 것은,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의 대화와 관심사가 놀라울 정도로 현대 여성들의 그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드리아나, 버지니아, 레오노라, 루크레티아, 코넬리아, 코린나, 헬레나 이렇게 일곱 명의 여성이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나이도 신분도 결혼 여부도 저마다 다르지만, 아버지, 남편, 아들, 형제를 포함하는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적지 않게 실망했다는 것은 동일하다. 이들은 아버지들이 왜 같은 자식인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지, 남편들이 왜 자신들의 배우자이자 자식들의 어머니인 아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는지, 아들들이 왜 자신들을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를 증오하거나 냉대하는지에 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다. 이는 마치 현대의 여성들이 커뮤니티나 SNS에서 자신들의 아버지와 남편, 아들, 남자 형제를 비난하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연상케 한다. 


"우리는 이미 과거에 너무 많이 닥치고 살았어요. 더 많이 닥칠수록, 더 고약한 것만 얻게 됐죠." (18쪽) 


"남자들은 결혼하고 나서야 비로소 몇몇 장점들을 갖게 되죠. 즉 그들이 자신들의 아내와 연합하게 될 때만 말이에요." (19쪽) 


"아직도 많은 남성들이 이 세상을 편협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자신들이 여자들보다 우월하게 창조되었다는 근거 없는 오류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독재자처럼 야만스럽게 여자들을 다루는 것이 정당하다고 믿고 있죠. 하지만 스스로의 오류를 납득할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 고수해 왔던 방식들을 바꿀 수밖에 없을 거예요." (22-3쪽) 


저자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그릇되고 어떤 식으로 여성의 삶을 좀먹는지를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나아가 저자는 남자들이 스스로를 여자에 비해 우월하다고 믿는 것이 군주제를 비롯한 독재 체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남자들이 여성들을 향해서만 흉포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남성들 사이에서조차 살해나 절도 같은 온갖 악행들이 저질러지는 것으로 보아 이는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남성 자신의 문제라는 지적도 통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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