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팝니다 - 상업화된 페미니즘의 종말
앤디 자이슬러 지음, 안진이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중문화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페미니즘 논의를 전개하고 발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페미니즘을 희석하고 변질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미국의 문화비평가 앤디 자이슬러가 쓴 이 책은 대중문화와 대중매체를 통해 페미니즘이 이용되고 변질되는 양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저자가 지적하는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중매체가 페미니즘 이슈랍시고 보도하는 내용은 대부분 유명인 또는 연예인 관련 이슈에 집중되어 있다. 엠마 왓슨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 가슴이 드러나는 옷을 입어도 되는지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동안, 비욘세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곡 가사가 페미니즘에 관한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는 동안, 다수 여성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문제에 관한 논의는 설자리를 잃는다. 일부 여성 연예인이 진정한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이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불법 촬영 카메라를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그만 연예인에 대한 관심을 끄고 '진짜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둘째, 요즘 대중문화 속에서 페미니즘이 발언권을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발언권은 언론 친화적인 페미니즘에게만 허용된다. 기성 언론과 대중문화는 남성 중심 문화에 길들여져 있으며 그 자체가 남성 중심 문화를 재생산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여성이 사회 구조를 바꾸고 체제를 전복할 가능성을 높이는 이야기를 결코 선호하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최고 임원 중 한 사람인 셰릴 샌드버그가 쓴 <린 인>이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그것이 페미니즘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하지만 실상은 여자들에게 현재의 불평등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개인의 힘으로 극복하라는 식의 '온건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페미니즘 담론이 괄목할 정도로 커진 한국에서도 대중문화 속 여성은 여전히 '예쁘게 말하라'는 주문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셋째, 가뜩이나 페미니즘을 다루는 영화나 매체가 부족한데 그마저도 진짜 페미니즘인지 아닌지 재단을 당한다. 저자는 페미니즘 영화가 개봉되면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쪼르르 달려가서 보고 페미니즘 영화가 맞나 틀리나 논하는 게 맞는 일인지 반문한다. 어떤 영화는 잘 뜯어보면 페미니즘 영화가 아닌데 화제를 끌려고 페미니즘 영화라고 광고하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실상 페미니즘 영화인데 페미니즘 영화로 규정되는 게 불편해서 페미니즘 영화라고 광고하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면 페미니즘 영화인지 아닌지는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 자체도 천차만별인데 여성 참여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즘 영화라고 규정할 수 있는 걸까. 최고의 페미니즘 영화라는 말은 찬사일까 비난일까. 아니면 그저 페미니즘 영화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는 잘했다는 정도의 인정일까. 외국 사례가 대부분인 점은 아쉽지만, 논의 자체는 유의미하며 시의적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