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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평점 :

<비바, 제인>은 여성혐오, 성폭행, 유리천장, 2차 가해, 미투 운동 등 오늘날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서 물결처럼 번지고 있는 여성 관련 이슈들을 재치 있게 다룬 소설이다. 개브리얼 제빈은 전작 <섬에 있는 서점>을 읽고 홀딱 반한 작가인데, <비바, 제인>이 <섬에 있는 서점>보다 더 좋은지 묻는다면 내 대답은 '예스!!!'다.
소설은 다섯 챕터에 걸쳐 다섯 여자의 목소리를 담는다. 첫 번째 챕터의 주인공 레이철은 육십 넘어 이혼하고 새 남자친구를 찾는 여성이자 하나뿐인 딸을 지키고 싶었던 엄마다. 두 번째 챕터의 주인공 제인은 실력 있는 웨딩 플래너이자 어린 딸 루비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이다. 세 번째 챕터의 주인공 루비는 엄마가 자신에게 숨기고 있는 비밀이 뭔지 알려고 하는 똘똘한 소녀다. 네 번째 챕터의 주인공 엠베스는 유명 정치인 남편을 적극적으로 내조하는 아내다. 다섯 번째 챕터의 주인공 아비바는 찰나의 실수로 인해 평생을 고통받을 상황에 내몰린 젊은 여성이다.
다섯 여자의 목소리는 하나의 사건으로 수렴된다. 2001년 사우스 플로리다의 유명 정치인이 젊은 여성 인턴과 일으킨 성추문이다. 여기서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은 각종 권력 다 누리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먹고살면서 뒤로는 젊은 여성 인턴을 건드린 남성 정치인이지, 그 밑에서 일하던 힘없는 여성 인턴이 아니다. 하지만 여론과 인터넷은 이 여성 인턴을 전도 유망한 정치인의 경력에 흠집을 낸 '꽃뱀'이라고 비난하는 등 엄청난 양의 '2차 가해'를 퍼붓는다. 성추문 사건 이후 여성 인턴이 선거 사무소에서 해고당하고 대학에서 제재를 받고 취업 길도 막혔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관심 없다(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요).
소설은 이들의 시선을 넘나들며 하나의 사건을 다각도로 조명함과 동시에, 오늘날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 남성은 물론 여성조차 내재하고 있는 여성혐오적인 관념은 무엇이고 이것이 뭇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파탄 내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가령 레이철은 딸에게 뚱뚱해지면 남자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니 살 좀 빼라고 타박하는데 이는 명백한 (비만혐오이자) 여성혐오다. 엠베스는 남편의 부정을 알고도 결혼 생활을 유지할뿐더러 피해자를 비난하고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데 이 또한 분명한 여성혐오다. 남성은 성추문을 일으켜도 공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여성은 성추문을 일으키면 공직은 물론 평범하게 취업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조차 허락받을 수 없다는 생각은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소설은 이렇게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인 사회상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추문에 휩싸여 인생의 나락으로 내몰린 여성이 어떻게 새로운 인생을 꾸리는지도 흥미롭게 보여준다. 미국보다 땅덩이도 작고 인터넷 보급률도 높은 한국에선 제인처럼 새 인생을 시작하려고 해도 시작할 수 없는 여성이 훨씬 많을 것이다. 한국판 <비바, 제인>은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