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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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은 서경식 선생의 대표작 <나의 서양 미술 순례>의 후속편 격이다. <나의 서양 미술 순례>가 처음 출간된 건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난 저자는 두 형(서승, 서준식)이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한국에서 투옥되고, 이로 인해 충격받은 부모님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사면이 벽으로 막힌 듯한 기분을 느꼈다. 도망치듯 유럽으로 떠났는데, 목적 없이 유럽의 미술관을 누비며 그림을 보고 조각을 감상했던 시간들이 훗날 전화위복이 된다. 저자는 이 여행의 기록을 책으로 발표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으며 작가로서도 큰 성공을 둔다.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은 <나의 서양 미술 순례>가 나온 지 30년 만에 이탈리아를 다시 찾은 저자의 기록과 감상을 담고 있다. 당시 변변한 직업도 없고 세상을 암울하게만 바라보는 삼십 대 청년이었던 저자는 이제 은퇴를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두 형은 살아서 출소했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불만 없는 상태이지만, 세상을 암울하게 바라보는 시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한국이 민주화되고 전 세계의 냉전이 끝난 후에도 일상 곳곳에 독재와 파시즘의 잔재가 남아있는 까닭, '내가 이런 안정을 얻은 것은 단순한 우연과 행운의 덕이라는 의식', '좀 더 어울리는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 내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까닭이다. 


저자는 30년 전에 찾았던 로마, 페라라, 볼로냐, 밀라노, 토리노 등을 다시 방문하며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미래의 자신과 만난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저자가 좋아하는 작가나 관심 있는 주제에는 큰 변화가 없다. 저자는 여전히 인간성을 시험하고 운명을 조롱하는 듯한 분위기의 작품에 매혹되며, 극한 상황에서 굴하지 않고 자기 신념을 관철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린다. 카라바조, 모딜리아니, 레비, 모란디, 긴츠부르크, 미켈란젤로 등이 그렇다. 저자는 이들의 작품 앞에서 묻는다. 저는 그동안 잘 살았나요. 지금 잘 살고 있나요. 남은 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한 점 그림 앞에 서서 자신을 비춰보고 인생을 돌아보는 노작가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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