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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평점 :

음식점에서 햄버그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만두가 나온다면 어떨까. 대체로 당황하거나 화를 내면서 종업원을 불러 음식이 잘못 나왔으니 다시 가져다 달라고 할 것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찾아온 손님들은 다르다. 이곳의 손님들은 주문한 음식과 다른 음식이 나오면 얼굴을 찌푸리기는커녕 소문 대로라며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
이곳에서 홀 서빙을 하는 종업원들은 모두 치매 환자다. 치매라고 하면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인 것들이다. 기억을 거의 잃고, 자꾸 집을 나가고, 가끔은 폭언을 하고, 심지어 환각 증세도 나타나는 슬픈 병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기획자인 오구니 시로도 그랬다. 저자 역시 치매 환자라고 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약간 위험한 사람들'이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던 저자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기획한 건, 2012년 방송국 PD인 저자가 취재차 치매 환자를 간병하는 시설에 방문했다가 주문하지 않은 음식을 대접받는 경험을 한 덕분(!)이다. 그날 시설에서 나오기로 예정된 메뉴는 햄버그스테이크였는데 눈앞에 놓인 음식은 아무리 봐도 만두였다. '오늘 메뉴는 햄버그스테이크 아니었나요?'라는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내뱉으면 시설 사람들이 그동안 쌓아온 삶이 무너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저자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콘셉트를 떠올렸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 햄버그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만두가 나오는 일도 있겠지만, 이 식당은 애초부터 '주문을 틀린다'고 전제했기 때문에 손님도 불쾌해 하지 않고 점원도 미안해할 필요 없다. 주문을 받던 종업원이 갑자기 옛날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삼매경에 빠지면 다 같이 이야기를 듣고, 음식이 잘못 나오면 손님들끼리 알아서 바꿔 먹으며 하하 호호 웃는다.
실수를 받아들이고 실수를 함께 즐긴다는, 조금씩의 '관용'을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분명히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가치관이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솔직히 대부분의 실수와 착오라는 것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조금만 대화를 하면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들이 아닐까. (194쪽)
2017년 6월 3일과 4일, 단 이틀 동안 도쿄에서 개점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검색 순위 1위에 오르고 세계 20개국의 미디어에 소개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그 비결로 손님들이 만들어낸 '관용'이라는 분위기를 든다. 요즘 사람들은 타인의 실수와 착오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누가 실수를 하면 비난하고 질책하기 바쁘지, 실수를 보고도 넘어가 주거나 너그럽게 용서해주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선 누가 실수를 해도 비난하거나 질책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다고 위로해주고 웃어준다.
치매 환자도 얼마든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도 이 기획이 큰 주목을 받은 포인트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종업원들은 치매 진단을 받기 전까지 멀쩡하게 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랜만에 땀 흘려 일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기 힘으로 돈까지 벌어서 즐겁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치매에 걸렸어도 죽기 전까지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의 말에 마음이 뭉클해지는 한편, 한국의 치매 환자들이 겪는 현실은 어떤지 알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