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 완벽해 보이지만 모든 것이 불안한 그녀의 인생 새로고침
숀다 라임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부키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그레이 아나토미>는 이십 대 초반, 한창 미국 드라마 열심히 봤을 때 눈물 쏟으면서 봤던 드라마 중 하나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멋진 드라마를 만들었을까 궁금했는데, 마침 <그레이 아나토미> 작가가 쓴 책이 나왔다. 제목은 <1년만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1년 동안 하기 싫은 일에 "노(NO)!"라고 하지 않고 "예스(YES)!"라고 한 결과를 담은 책이라고 하는데, 어째 이거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같다...??? 





역시 그랬다. 언젠가 테드(TED) 강연을 통해 접한 적 있는 이야기였다. 이 강연을 한 사람이 <그레이 아나토미> 작가 숀다 라임스였다니. 못 들은 건지, 들었는데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아무튼 이 강연 내용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책까지 나왔다고 하니 - 게다가 내가 사랑하는 <그레이 아나토미> 작가가 쓴 책이니 - 읽어보지 않을 수가 있나 ㅎㅎㅎ 


400쪽이 넘는 제법 두꺼운 책인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드라마 작가답게 필력이 대단해서, 마치 인생 경험 많은 왕언니의 수다를 듣는 기분으로,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온 숀다 라임스의 토크를 듣는 기분으로 후딱 읽었다. 


저자 숀다 라임스는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다. 인기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스캔들>의 작가 겸 제작책임자이며 <범죄의 재구성>의 총괄PD, <프린세스 다이어리 2>, <도로시 댄드리지>의 각본을 썼다. <타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두 차례 선정됐고, <포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재계 여성 50인으로 선정됐고, 2003년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존. F. 케네디 센터 이사 임명장을 받았다. 현재까지 결혼은 한 적 없고, 두 번의 입양과 한 번의 대리모 출산을 통해 세 딸을 얻었다. 


부면 부, 명예면 명예, 사생활이면 사생활,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다 얻은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실은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저자는 어느 날 언니에게 이 말을 듣고 완전히 무너졌다. " 너는 뭐든 좋다고 하는 법이 없지." 언니가 보기에 동생은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겁쟁이였다. 파티에 초대하는 사람도 있고, 데이트를 제안하는 사람도 있고, 방송 출연을 제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숀다의 대답은 언제나 노, 노, 노. 사람들 앞에서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 안다.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 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 안다. 하지만 스스로 달라지지 않으면 인생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언니의 말이 저자의 마음에 콱 박혔다.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길을 잃지는 않는다. 

하나씩 거절하다 보면 점점 길을 잃게 된다. 


오늘 밤에 만나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오랜만에 대학교 때 룸메이트가 만나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어떤 파티에 가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휴가를 가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그러다 보면 한 번에 한 발짝씩 길을 잃는다. (227쪽) 


그때부터 저자는 1년 동안 하기 싫은 일이 생길 때마다 "노!"라고 하지 않고 "예스!"라고 답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오랫동안 방송 출연 요청을 거절했던 방송에 나갔더니 전국에서 지인들이 꽃과 함께 찬사를 보내왔다. 무대 공포증을 무릅쓴 다트머스 대학 졸업식 연설은 최고의 졸업식 연설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그동안 난자를 냉동하기 위해 맞은 호르몬 주사 후유증으로 인해 비만에 시달렸는데 다이어트에도 성공했다.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하면 바쁘고 힘들다고 물리쳤는데 이제는 아이들과 잘 놀아줄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과의 사이도 훨씬 원만해졌다. 


물론 "노!"라고 해야만 하는 상황에도 "예스!"라고 해선 안 된다. 저자는 자신이 단호하게 "노!"라고 했기 때문에 얻은 성과도 소개한다. 대표적인 예가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크리스티나 양을 연기한 산드라 오 캐스팅이다. 산드라 오를 캐스팅하기 이전에 다른 스태프들이 먼저 점찍어둔 배우가 있었다. 저자는 그 배우가 싫었지만, 그때만 해도 드라마가 성공하기 전이었기에 다른 스태프들의 의견에 반기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노!"라고 말했고, 얼마 후 산드라 오라는 보석 같은 배우를 만나게 되었다. 만약 그때 "노!"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레이 아나토미>가 이만큼 성공하지도, 산드라 오라는 훌륭한 배우가 더 일찍 알려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남자들은 집안 일과 아이들을 남에게 맡긴다고 절대 미안해하지 않잖아요. 절대. 

그런데 우리는 왜 미안해해야 하나요?" (165쪽) 


건방지고 염치없고 뻔뻔한 여자의 반대말은 뭘까? 아는 분? 

정답은 바로 말 잘 듣고 순진하고 소심한 여자다. (265-6쪽) 


저는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정말 싫어합니다. 

뭔가 다른 것 같잖아요. 뭔가 특별하다고 할까, 보기 드물다고 할까. 다양성이라니! 

TV에서 여성과 유색 인종과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라도 되는 듯한 느낌이잖아요. 

저는 다른 단어를 씁니다. 일반화라는 단어를요. 저는 TV를 일반화하고 있어요. (329-30쪽) 


이 책은 재미있을 뿐 아니라 좋은 말이 넘쳐나는 좋은 말 퍼레이드이기도 하다.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비혼으로서, 세 딸의 엄마로서 다른 여성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고 자극이 될 만한 이야기도 많이 들려준다. TV에서 여성과 유색 인종과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은 TV를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일반화'하는 것이라니. 내가 이래서 <그레이 아나토미>를 그렇게 좋아했구나. <그레이 아나토미>가 그저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가 아니었구나(ㅎㅎㅎ). 


프로젝트가 끝난 후, 저자가 언니에게 모든 것이 언니 덕분에 벌어진 일이라고 고마워하자 언니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너는 허락이 필요했던 거야." 할까 말까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한 번 해보라고 동생의 등을 살짝 밀어준 언니처럼, 이 책 역시 실패가 두렵고 주위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망설이기만 하는 사람들의 등을 살포시 밀어준다. 읽어볼까 말까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한 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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