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소아 -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 클래식 클라우드 4
김한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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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는 우리가 만든 개념이므로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_ <불안의 책>, 텍스트 112 


페소아에 대해 잘 모른다. 페소아가 쓴 책은 물론 시 한 줄도 읽어본 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한민 작가가 쓴 <페소아>를 읽는 내내 잘 아는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페소아가 생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포르투갈 리스본이 배경인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설에 나오는 아마데우 프라두라는 작가의 삶이 어딘가 페소아의 삶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잘 아는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과 실제로 잘 아는 것은 다르므로, 이 책을 통해 페소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다. 첫째는 페소아가 전무후무한 이명(異名) 작가라는 것이다. 실제 이름과 다른 이름을 사용해 창작하는 방식으로 활동한 작가는 페소아 말고도 많이 있다. 예이츠, 엘리엇, 키르케고르, 로맹 가리 등이 그렇게 했다. 하지만 페소아처럼 약 120개나 되는 이름을 사용한 작가는 드물다, 아니 없다. 대표적인 것만 꼽아도 알베르투 카에이루, 리카르두 레이스, 알바루 드 캄푸스, 알렉산더 서치, 안토니우 모라 등등. 페소아가 왜 본명이 아닌 이명을 사용했는지, 각각의 이명의 뜻은 무엇이며 유래는 무엇인지 등은 페소아의 작품 세계와 더불어 후대 연구자들의 큰 관심사다.


둘째는 페소아의 연애 사정이다. 페소아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알려진 연인은 단 한 사람뿐인데, 바로 오펠리아 케이로즈다. 여자는 적당히 교육받고 집안일을 돕다가 좋은 데 시집가는 것이 정해진 인생 코스이던 시절에, 오펠리아는 중산층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직업을 가지고 싶어 했고 결국 일간지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다. 마침 이 회사의 동업자 중 한 사람이 페소아의 친척이었고 이따금 페소아가 일을 거들러 갔기 때문에, 오펠리아와 페소아는 자연히 서로를 알게 되었고 부지불식간에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오펠리아가 결혼을 하고 싶어 하자 페소아의 마음이 급히 식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 


후대 연구자들은 이 연애에 대해서도 다양한 분석을 내놓는다. 과연 페소아는 오펠리아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어떤 연구자는 페소아가 오펠리아와 진심으로 사랑에 빠졌다기보다는 '문학적 게임'을 즐겼다고 분석한다. 마침 오펠리아는 페소아의 문학적 영웅인 셰익스피어의 작품 여주인공 이름인 데다가 페소아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사기까지 했으니 페소아로서는 이보다 황홀한 일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혹자는 페소아의 '진짜' 사랑은 동성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아직 명백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그의 성적 취향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작품에는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셋째는 페소아가 가진 여행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다. "여행은 무엇이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든 석양은 그저 석양일 뿐인데 그것을 보러 콘스탄티노플까지 갈 필요는 없다. 여행을 하면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나는 리스본을 떠나 벤피카에만 가도 자유를 느낀다. 리스본을 떠나 중국까지 간 어느 누구보다 강렬하게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내 안에 자유가 없다면 세상 어디에 가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불안의 책>, 텍스트 138) 


리스본에서 보는 석양이 콘스탄티노플에서 보는 석양과 다르지 않다는 페소아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스카이라인부터 다르잖아요), '내 안에 자유가 없다면 세상 어디에 가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에는 크게 동의한다. "풍경이 풍경이 되는 것은 우리 안에서다. ... 마드리드, 베를린, 페르시아, 중국, 그리고 남극과 북극, 어디서든 나는 나 자신 속에, 나만의 고유한 유형의 감정 안에 있을 뿐이 아닌가? 삶이란 우리가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행이란 결국 여행자 자신이다." (<불안의 책>, 텍스트 451) 


그러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페소아를 좋아하고 페소아의 자취를 보기 위해 포르투갈 리스본을 찾을 생각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당부하고 싶다. 저자에 따르면 여행 가이드가 '페소아의 집'이라고 소개하는 곳은 페소아가 실제로 살았던 집이 아니다. 페소아에 대해 알고 싶다면 페소아의 몸이 머물렀던 공간보다 그의 마음이 머물렀던 글과 시, 책을 읽어보는 것이 훨씬 낫다. 저자 역시 페소아와 더욱 가까워지고 싶어 포르투갈에서 살기까지 했으나 페소아를 완전히 알게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그럴 수밖에. 페소아에 말에 따르면 - 우리는 타인을 보고 있어도 결국 타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보고 있는 셈이니, 페소아를 보고 있어도 보이는 건 우리 자신이지 페소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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