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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평점 :

모리미 도미히코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그가 얼마나 교토를 사랑하며, 그의 소설에 교토의 명소나 행사가 자주 등장하는지 알 것이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야행> 등 그의 대표작은 모두 교토가 배경이며, 가모강, 산조대교, 롯카쿠도, 스마트카페, 가와라마치 OPA 같은 교토의 지명이나 명소를 아무 변형 없이 그대로 등장시키니 교토 출신이 아닌데도(교토 옆에 있는 나라 현 출신이다) 교토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하나로 불릴 만하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신작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역시 교토가 배경이다. 고와다는 교토 교외에 있는 모 화학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청년이다. 평일에는 묵묵히 일하고 주말에는 기숙사에서 빈둥대는 그를 주변 사람들은 마뜩잖게 여긴다. 젊은 성인 남자가 애인도 없고 취미도 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멍하니 보내는 것은 인생 낭비라고, 게으름이라고 '고나리질'을 한다. 그때마다 고와다는 '게으름뱅이인 게 뭐가 나빠?'라고 생각은 하지만 - 싸움이 나면 귀찮으니 - 대꾸하지 않고 흘려 넘긴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아침. 방금 전까지 잠에 취해 있던 고와다의 눈앞에 너구리 가면을 뒤집어쓴 사내가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폼포코 가면'. 검은 망토를 두르고, 지팡이를 들고, 귀여운 너구리 가면을 쓴 모습으로 교토 시내를 누비며 곤란한 사람을 도와준 것이 화제가 되어 일약 교토의 스타로 떠오른 그는, 이제 더는 폼포코 가면으로 활약할 수 없게 되었으니 고와다가 '제2대 폼포코 가면'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간곡히 부탁한다. 타고난 게으름뱅이인 고와다의 대답은 당연히 '싫은데요'. 일본 3대 축제 중 하나이자 일 년 중 교토 최대 행사인 기온 축제(기온 마쓰리)가 절정에 달할수록, 폼포코 가면을 둘러싼 이들의 갈등과 모험도 함께 절정에 달한다.
온다 선배는 "앞으로도 놀 예정이 가득해요. 이제 삼십 분 뒤면 여기를 나가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 "시간과의 싸움이네요." "그렇죠. 하루에 얼마나 많은 모험을 할 수 있는지를 추구하는 겁니다. 한 시간만 있으면 우리는 지하철 도자이선을 타고 비와호에도 갈 수 있어요. 긴테쓰 전차를 타고 나라현의 도다이지에도 갈 수 있죠. 한큐 전차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오사카 센니치마에의 난바그랜드카케쓰에도 갈 수 있어요." (109~110쪽)
찜통같이 더워도 좋으니 일본에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이 소설을 읽으니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했다. 소설에 나오는 교토의 풍경이나 놀거리, 먹거리 등을 상상하는 건 즐거웠지만, 이렇게 멋진 도시에 살면서 누릴 줄 모르는 고와다를 보니 답답했다. 나라면 평일이든 주말이든 교토는 물론 근처에 있는 오사카, 나라, 고베 등을 누비며 열심히 놀러 다닐 텐데. 고와다는 참 놀 줄 모르는 사람이고만...!
모리미 도미히코의 전작 중에서는 <야행> 보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와 비슷하고,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보다는 <유정천 가족>과 비슷'한 듯'하다(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건 <유정천 가족>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절판된 상태이며 전자책으로만 구입 가능하다).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의 대중 소설이지만, 모리미 도미히코의 세계관에 익숙지 않거나 교토에 가본 적이 없거나 교토의 지리나 문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난해할 수 있다. 일단 1회독은 했으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유정천 가족>을 읽고 2회독에 도전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