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래시 -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Philos Feminism 1
수전 팔루디 지음, 황성원 옮김, 손희정 해제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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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804쪽이다. 다 읽는 데 한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금방 읽었다('금방'이 일주일이다). 혹시 나처럼 책의 두께를 보고 겁부터 먹은 독자가 있다면 한국어판 해제, 서문, 미주, 역자 후기 등을 제외하면 660쪽'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미주만 117쪽!!!). 


최근에 출간된 책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건 1991년이다. 저자 수전 팔루디는 이 책의 출간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196,70년대를 거치며 인권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페미니즘도 활기를 띠었고 소정의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80년대가 되고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 정서가 퍼지면서 정치, 경제, 사회, 언론 할 것 없이 각 분야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이 거세졌다. 여성의 권리 신장을 저지하려는 반동의 메커니즘을 저자는 '백래시(backlash, 반격)'이라고 명명한다. 


백래시의 양상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이쯤 했으면 만족하라'는 것이다. 이제 여성은 어느 대학이든 입학할 수 있고, 어느 기업이든 입사할 수 있고, 어느 은행에서든 신용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이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고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러니 여성이 지금보다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여성이 남성이 받는 임금의 60퍼센트밖에 받지 못하고, 입사시 각종 불이익을 당하며, 여전히 많은 비혼 여성이 (신용할 만한) 남성 배우자가 없다는 이유로 대출 심사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현실을 무시하는 소리다. 


둘째는 '그래서 남는 게 뭐냐'는 것이다. 보수 성향 잡지인 <내셔널 리뷰>에 이런 글이 실렸다. "여성해방은 우리에게서 여성 대부분의 행복을 좌우하는 한 가지, 즉 남성을 사실상 빼앗아 갔다." 매스컴과 미디어는 페미니즘에 '경도'된 여성들이 비혼을 선언한 이후 우울증, 가난, 자살, 섭식장애 등에 시달리는 모습을 끊임없이 비췄다. 결혼 대신 직업적 성공(&경제적 독립)을 선택한 여성이 남편도 자식도 없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괴로워하는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물론 이러한 백래시는 대체로 노골적이지 않다. 정부와 기업, 매스컴과 미디어는 페미니즘을 대놓고 비판하는 대신 매끄럽고 교묘하게 여성들의 등골을 빼먹는 전략을 취한다. 대표적인 예가 자기 계발과 경제적 독립이다. 담배 회사가 '선도적인 페미니스트'에게 '자유의 횃불'을 피우라고 하거나, 팬티스타킹 회사가 '해방적인' 팬티스타킹이 나왔다며 홍보하는 식이다. 그 결과 여성들에게 남는 것은 '카드 빚과 터져나갈 것 같은 옷장, 그리고 절대 끝나지 않는 허기'다.


저자는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들에게 학교를 개방하고, 취업 기회를 주고, 기업과 정부, 국회 요직을 내줄지언정 '절대 내주지 않는 단 한 가지'를 공략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바로 '가부장제'다. 


"여성들이 아무리 많은 스톡옵션과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의회 의석과 이사회 자리를 차지한다 해도 현 상태가 유지되는 한 여성들은 정치적 교착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저들이 우리를 이 세상에 받아 주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30쪽) 


저자는 남성들이 강하게 반격하면 할수록 페미니스트들이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남성들은 미국 여성들이 기회만 주어지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비참하게도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건 바로 여성들이었다." (663쪽) "당신을 죽이지 못하는 것은 당신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라는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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