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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ㅣ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5월
평점 :

한 사람의 생애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추억이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취약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치 않는 경험을 해도 그것이 자기 탓이 아닌 줄을 모르고, 그리하여 불완전하거나 왜곡된 기억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영국 작가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자전 소설 <괜찮아>의 주인공 패트릭 멜로즈도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영국의 부유한 상류층 가문에서 태어난 패트릭은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어머니로부터 적절한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이제 겨우 다섯 살이고 주변에 처지를 비교할 만한 친구도 없어서 학대가 학대인 줄 모르고 무관심이 무관심인 줄 모른 채 자란다. 아버지가 고함을 지르거나 자신을 때리면 자신이 맞을 만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자책하거나, 아버지란 으레 그런 존재라고 체념하기 일쑤다.
패트릭이 얼마나 끔찍한 생활을 하는지 주변 어른들도 안다. 이들은 패트릭의 아버지가 얼마나 흉폭하고 어머니가 얼마나 무기력한지 알지만, 자신들의 부와 명예, 사회적 관계 등을 지키기 위해 알아도 모르는 척,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결국 패트릭은 집안의 독재자이자 압제자인 아버지 앞에 힘없는 토끼처럼 무너지고 평생에 걸쳐 자신을 괴롭힐 '그 일'을 당하게 된다. 어리고 무지한 패트릭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자신이 방금 무슨 일을 당했는지 전혀 모른다. 훗날 '그 일'의 정체를 알게 되지만 시간은 이미 흘렀고 자신은 성숙한 상태다.
<괜찮아>는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의 1부에 해당한다. 패트릭 멜로즈의 불우한 유년 시절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던 단 하루의 일을 그린다. 패트릭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끔찍한 학대를 당한 것도, 이후 약물에 빠지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택한 것도 작가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실제 경험이다. 1992년 이 소설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자전적 이야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정 폭력, 그것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한 성적 학대를 폭로하는 내용의 소설을 낸다는 것은 지금도 어려운 일이다.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이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는 각오로 이 소설을 썼다. 그래서일까. 작가가 유년 시절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묘사하는 솜씨는 매우 생생하고 구체적인데, 전체적인 어조나 분위기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고 차분하다. 작가와 독자 모두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는 장면에서도 작가는 침착한 어조를 유지한다.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와 방치했던 어머니, 자신의 처지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던 주변 어른들의 모순과 위선에 대해서는 마치 신이 인간 세상을 위에서 굽어보듯이 치밀하고 꼼꼼하게 묘사한다.
이후 패트릭이 어떤 문제를 겪고 어떻게 극복하는지는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의 나머지 4부- <나쁜 소식>, <일말의 희망>, <모유>, <마침내> -에 걸쳐 밝혀질 것이다.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은 올해 5월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주연은 <셜록 홈스>, <닥터 스트레인지> 등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 "패트릭 멜로즈 연기는 내 버킷리스트였다!"라고 밝힌 적도 있는 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을 것으로 기대된다. 2부 <나쁜 소식>의 국내 출간을 기다리는 동안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패트릭 멜로즈 연기를 감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