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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화가 1
이노카와 아케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그림의 모델이 전부 죽은 '비운의 천재 화가'가 있다. 화가의 이름은 스가누마 에이지로. 그림의 모델을 비롯해 초상화를 그려준 연인과 은사까지 모두 급사하자 화단에선 스가누마를 내쫓았고, 대중은 스가누마를 불길하다고 꺼렸다. 그런 연유인지 아닌지, 지난 10년 동안 스가누마는 '누에'라고 불리는 환상의 동물만 그리고 있다. 누에란 머리는 원숭이, 몸통은 너구리, 손발은 호랑이, 꼬리는 뱀인 환상의 동물로, 사실 스가누마는 미대 시절부터 누에만 그린다고 소문난 '누에 화가'다.

허구한 날 어두운 방 안에 처박혀 누에만 그리는 스가누마를 보다 못한 소꿉친구 타자키는 의뢰인을 데려온다. 스가누마를 찾아온 의뢰인은 얼마 전 아들을 잃은 중년의 부인. 스물여덟 살이 넘은 장성한 아들을 지난달 해난 사고로 잃었다. 부인은 바다가 거칠어 시신조차 떠오르지 않았으니 스가누마가 부디 아들의 모습을 그려서 아들의 영혼만이라도 바닷속에서 끌어올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산 사람의 영혼은 죽이고 죽은 사람의 영혼은 살리는 것으로 알려진 스가누마의 실력을 발휘해달라고 요청한다.

스가누마는 자신에게 그런 특별한 능력은 없다고 부정했지만, 부인이 워낙 간곡하게 청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부인이 부탁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망자의 영혼을 그리는 것은 누에를 그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뢰인의 이야기와 죽은 사람의 옛 사진, 스가누마가 받은 인상 등을 종합하고 짜깁기하는 작업의 반복이다. 마침내 그림을 완성한 스가누마. 의뢰인과 그녀의 가족들은 죽은 사람이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스가누마의 마음도 흐뭇하다. 하지만 1년 후 의뢰인이 스가누마를 다시 찾아와 그림을 고쳐달라고 부탁한다. 죽은 아들이 그림에서 빠져나와 집안을 돌아다니는 통에 가족들이 무서워서 살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매회 새로운 의뢰인이 스가누마를 찾아오고 스가누마가 의뢰받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죽은 사람이 그리워서 영혼이라도 그려달라는 의뢰인이 있는가 하면, 사는 게 괴로워서 죽고 싶으니 그림을 그려서 영혼을 빼앗아달라는 의뢰인도 있다. 어느 날에는 여학교에 다니는 소녀 둘이 스가누마를 찾아와 조만간 함께 죽을 작정이니 영정 사진 대신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넣는다. 두 소녀에게는 1930년대 당시의 조혼 풍습과 여성차별에서 비롯된 기구한 사연이 있었는데 어떤 사연인지는 만화로 확인하시길.

스가누마가 비운의 천재 화가로 이름을 날리기(!) 전의 모습도 나온다. 스가누마가 교토에서 미대에 다니던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상경하는 에피소드다. 이 밖에도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모두 여섯 편이나 실려 있다.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있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의뢰받은 일을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만화라는 점이 <충사>를 연상케 한다. <충사>의 팬으로서 이 만화도 마음에 쏙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