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로는 충분하지 않다 - 트럼프의 충격 정치에 저항하고,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얻는 법
나오미 클라인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리얼리티 쇼로 명성을 얻은, 탐욕과 허영의 상징인 트럼프가 세계의 명운을 좌지우지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했다. 


<노 로고>, <쇼크 독트린>,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등을 쓴 나오미 클라인도 그중 한 명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결코 도발적인 해프닝이 아니라고 말한다. 트럼프는 인종, 종교, 성별, 성적 지향, 신체적 외양, 신체적 능력 등을 기준으로 인간의 삶에 기준을 매기는 강력한 사고 체계가 낳은 산물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은 타인에게 무슨 짓을 해도 법적,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믿는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일 뿐이다.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도, 트럼프를 만든 제도와 정치 문화, 사회 분위기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제2, 제3의 트럼프는 언제든 나타날 것이다. 


제1장에서 저자는 트럼프가 어떻게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고, 그 브랜드를 이용해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트럼프를 가리켜 '최악의 브랜드 깡패'라고 평가한다. 트럼프는 사업을 잘해서 부자가 된 게 아니다. 애초부터 부잣집 아들인 트럼프는 자신의 건물마다 자신의 이름을 대문짝만 하게 붙이고, 각종 신문과 잡지 표지에 자신의 얼굴을 싣고, 할리우드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 정점이 <어프렌티스>라는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이다. 당시 트럼프의 본업인 부동산 사업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는데, 트럼프는 <어프렌티스>에 출연해 성공한 사업가 이미지를 정착시켰고 트럼프 브랜드를 내건 다양한 사업을 시작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즉, 트럼프를 성공시킨 건 트럼프 자신이 아니라 트럼프를 하나의 성공 브랜드로 형성한 언론과 방송, 그리고 트럼프 일가의 럭셔리한 생활상을 보며 자신의 욕망과 허영을 대리만족한 대중이다. 


제2장과 제3장은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마침내 양손에 거머쥔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을 어떻게 활용하여 사회를 망가뜨리는지, 어떤 식으로 기존 미국 정부의 방침을 철회하고 국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지를 다룬다. 트럼프는 자신이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전쟁도 평화도 트럼프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문제는 트럼프의 이러한 성미를 극소수의 부유층과 권력 집단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때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가 군수 산업과 석유 산업이다. 저자는 전쟁 특수를 환영하는 특정 산업의 이익이 트럼프의 이익과 맞아떨어질 때 무시무시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승리이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이 아니다. 


마지막 제4장에는 남은 트럼프 임기를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트럼프는 어느 날 갑자기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정권을 장악한 것이 아니다. 민주적인 선거 제도를 통해 선출된 합법적인 지도자다. 저자는 이런 괴물이 대통령이 되도록 용인한 사람들과 사회 분위기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적극적인 저항 운동을 통해 성평등과 성소수자 운동, 환경 운동의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한 것처럼 격렬한 노력이 필요하다. 트럼프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내면에 있는 트럼프를 인정하고 탐욕이나 허영, 지나친 경쟁심 같은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트럼프 보유국'은 아니지만 트럼프 못지않은 폭정과 학정을 일삼았던 정치 지도자를 경험한 적 있는 나라의 일원으로서 저자의 고충과 우려가 절절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저자가 강조한 '격렬한 노력' 덕분에 마침내 한국은 트럼프를 연상케 하는 나쁜 정치 지도자를 몰아내고 좋은 정치 지도자를 맞이했지만, 저자가 말한 대로 탐욕과 허영이 당연시되고 차별과 불안이 도처에 존재하는 한 언제 어디서든 트럼프(또는 716, 503)처럼 나쁜 지도자가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분석과 지적은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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