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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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이름, 추사 김정희. 추사가 남긴 추사체와 세한도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정작 추사의 생애와 철학,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제 추사를 만나고 싶으면 유홍준 교수가 쓴 추사 김정희의 전기 <추사 김정희>를 읽으면 된다. 2002년에 나온 <완당평전>을 개고한 이 책에는 유홍준이 오랫동안 연구하고 정리한 추사의 삶과 학문과 예술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추사의 탄생부터 만년을 일대기 순으로 소개한다. 추사는 1786년 정조 10년에 충청도 예산에서 태어났으며,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사위였기에 집안 남자 대다수가 영조의 비호를 받으며 출세를 거듭했다. 추사의 탄생과 관련해서는 천재의 탄생다운 신기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완당선생전집> 머리글로 실려 있는 <완당 김공 소전>에는 어머니 유씨가 회임한 지 24개월 만에 추사를 낳았다는 말이 적혀 있고, 추사가 태어날 무렵 집 뒤편 우물물이 줄어들고 뒷산 나무들이 시들시들해졌다는 말도 전해진다. 


추사는 어린 시절부터 서예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일곱 살 때 입춘첩(입춘대길)을 써서 대문에 붙였는데, 당시 남인의 재상인 번암 채제공이 이것을 보고 집 안으로 들어와 대문에 붙인 글씨는 누가 쓴 것이냐고 물었다.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이 우리 집 아이의 글씨라고 답하자, 채제공은 "이 아이는 필시 명필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오. 그러나 만약 글씨를 잘 쓰게 되면 반드시 운명이 기구할 것이니 절대로 붓을 잡게 하지 마시오. 그러나 만약 문장으로 세상을 울리게 하면 크게 귀하게 되리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추사는 명필로 이름을 떨쳤고 두 차례 귀양살이를 했으니 채제공의 예언은 들어맞은 셈이다.


명문가의 자제로 남부럽지 않게 보낸 어린 시절은 금방 끝이 나고, 추사는 가족과 아내, 일가친척을 병마로 모두 잃고 혼자서 집안을 추슬러야 하는 입장이 된다. 24세의 나이에 생원시에 합격한 추사는 어려서 스승으로 모셨던 박제가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연경 이야기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동지사의 부사로 선임되어 연경에 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갈 자격을 얻은 것이다. 이때부터 추사는 여러 번 연경을 오가며 연경의 학예인들과 교류했다. 이 과정에서 청나라의 최신 서예 사조를 습득하고, 자신의 글씨를 청나라 사람들에게 선보이기도 했다. 


추사는 성격이 워낙 대쪽 같아서 좋아하는 사람은 더없이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무척 싫어했다. 이로 인해 오해나 원한을 사는 일도 있었고 이 때문에 억울한 귀양살이를 두 번이나 했다. 추사와 그의 일가에게는 불행한 일이었겠지만, 그 덕분에 그의 학문 세계가 더욱 깊어지고 예술 세계가 더욱 다채로워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만약 추사가 처세에 능하고 공무에만 매진했다면 우리는 추사로부터 그 뛰어난 글씨도 그림도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혹은 이런 인물이 공무에 매진했다면(당시 왕들이 추사의 진가를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등용했다면) 조선 말기의 환난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이 책에는 280여 점의 도판이 실려 있어 추사 예술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이제 막 글씨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답게 또박또박 반듯하게 쓴 글씨부터, 온 세상의 모든 글씨를 연구하고 습득한 대가다운 풍모가 느껴지는 말년의 글씨까지, 추사가 남긴 글씨를 쭉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지고 감동이 샘솟는다. 여기에 추사가 당시 어떤 상황, 어떤 조건 속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 글씨를 썼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더해져 있어 흥미롭다. 과천에 추사 박물관이 있다고 하니 조만간 시간을 내서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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