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즉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라 열심히 노력하는데 고작 이 정도고, 누구는 아무런 노력을 안 하고도 많은 걸 가져서다. 분명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배웠는데, 또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고 배웠는데 이상하다. 뭔가 속은 것 같다. 잘못 살아온 것만 같다. 그렇다고 노력을 멈출 수도 없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나마 지금 정도도 유지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어서 괴롭다. (21쪽) 


표지만 봤을 때는 요즘 유행하는 흔하디흔한 힐링 에세이일 줄 알았다. 막상 읽어보니 저자가 '득도'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겪은 일들은 결코 '흔하디흔한' 범주의 것이 아니다. 가정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 결코 순조롭지 않았던 학창 시절, 4수만에 대학 입학, 3년의 공백, 취업 후 일러스트레이터로 투잡을 뛰며 치열하게 지냈던 날들, 그리고 퇴사... 이런 일들을 겪으며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고 탄식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저자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다른 대학에 입학해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4수를 불사해 홍익대 미대에 들어갔다. 대학 시절에는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을 벌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했을 때 저자를 받아주는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그 때부터 3년 간 취업 준비를 빌미로 여러 가지 일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지인의 소개로 한 회사에 취업했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며 투잡을 뛰느라 몸도 마음도 성하지 않았다. 결국 마흔을 앞둔 어느 날 퇴사를 결심했다. 나름대로 '노오력'을 하고 살았지만, 원했던 부도 명예도 행복도 사랑도 손에 쥘 수 없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죄를 탓하기엔 지나온 세월도, 남은 나날도 너무 길었다. 


몇 년 전, 회사에 다니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당시 나는 퇴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상과 현실을 저울질하며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3년만 더 꾹 참고 일해보자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중략) 그리고 일주일 후, 회사가 없어졌다. 사장님이 직원들을 불러놓고 회사를 접어야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매출도 감소했고 업계 전망도 안 좋고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폐업을 결정했다는 이야기였다. 아아, 내가 했던 고민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67쪽) 


저자는 몇 년 전, 퇴사를 할까말까 고민하던 차에 회사가 없어지는 일을 겪었다. 그때 저자가 느낀 것은 인생은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뿐더러 내가 아무리 고민해서 무언가를 선택해도 그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믿지만, 인간은 한낱 파도에 휩쓸리는 힘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좋아서 노를 젓는 것이라면 말리지 않겠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노젓기를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불안정한 삶을 택한 것도 같은 이유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한다고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건 아니다. 다행인 건 남들이 좋아할 만한 걸 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어차피 결과를 알 수 없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편이 낫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무조건 열심히 노력하지 말고, 지금 내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이 길이 내 의지로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한 번쯤 고개를 들어 확인해보자. 열심히 살지 않아도 나의 속도와 방향이 맞다면 조금 더디게 가도,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가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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