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 클래식 클라우드 2
이진우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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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나 출신 학교, 숨을 거둔 집,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묘소에 가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나는 몇 년 전에 좋아하는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학창시절을 보낸 일본 고베의 한신칸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졸업한 학교를 둘러보고, 그가 들렀을 것으로 짐작되는 서점에 들르거나 거닐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해변을 따라 걸어보니, 작가는 물론 작품에 대해서도 전보다 많이 이해하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를 좋아한다면, 한국 니체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진우 교수가 쓴 <니체 :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를 읽고 니체의 자취를 따라 여행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이 책에는 1844년생인 니체가 35세가 된 1879년, 바젤 대학 교수직을 스스로 버리고 방랑의 길을 택한 후 9년 반만에 토리노에서 몰락하기까지 그가 지나갔던 자취를 따라 여행한 기록이 담겨 있다. 그가 따라간 니체의 여정은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스위스 질스 마리아, 프랑스 니스를 거쳐 이탈리아 토리노에 이르는 긴 여정이다. 


니체의 이름이야 익히 들었지만 그의 생애나 사상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이 책을 통해 니체의 삶과 철학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니체는 결코 외향적이거나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지만 언어와 음악에 관해서만큼은 누구 못지않은 열정을 불태웠다. 특히 바그너가 주도하는 음악 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사람들은 니체가 바그너가 아니라 바그너의 아내 코지마를 흠모한다고 의심했는데 이는 사실이었다. 이후 니체는 유명한 삼각관계 소동을 한 번 더 일으킨다. 이때의 상대는 니체 외에도 릴케, 프로이트 등을 매혹한 유럽의 뮤즈 살로메와 파울 레다. 


두 번의 삼각관계, 두 번의 실연을 겪으며 크게 낙담한 니체는 고통을 부정하거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고통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니체는 사실 대단한 마조히스트인지도 모른다...). 이때만이 아니다. 가난이 괴롭히면 가난에 대해, 병마가 덮치면 병마에 대해, 죽음의 공포가 밀려들면 죽음에 대해, 니체는 끊임없이 사유하고 끈질기게 답을 찾았다. 이 과정을 통해 니체의 사유는 허무주의의 질곡을 통과해 영원회귀 사상으로 나아갔다. 인간이 초인(超人)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변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쓴 책들은 당대엔 널리 읽히지 못했으나, 현재는 전 세계인들이 읽고 연구하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니체는 토리노를 매일매일 다른 감성으로 받아들인다. 모네가 하루의 리듬에 따라 다르게 표출되는 풍경의 분위기를 화폭에 담았던 것처럼 니체는 토리노를 다양하게 체험한다. 우리가 도시의 길을 매일 반복해서 걸을 수 있는 것은 그 길이 매일매일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287-9쪽) 


이 책이 기존의 니체 해설서와 다른 점은 니체가 실제로 머물렀던 곳들을 저자가 직접 가보고 느낀 점까지 담겨 있다는 점이다. 니체는 우쭐거리듯 늘어서 있는 개성 없는 건물로 가득한 베니스나 독일의 도시보다는, 아기자기한 골목길이 많고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니스나 토리노 같은 도시를 사랑했다. 안정적이지만 지루한 낙타의 삶보다 위험하지만 변화무쌍한 사자의 삶을 동경했던 니체의 사상을 꼭 닮은 도시 취향이 아닐 수 없다. 


아르테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현재 셰익스피어 편과 클림트 편이 출간되어 있다. 향후 페소아, 오스카 와일드, 가와바타 야스나리,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편 등등이 출간될 예정이다(작가진도 김사과, 최민석, 이다혜, 정여울, 이현우, 김경희, 이정모 등 쟁쟁하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 팟캐스트, 팟빵 등에 업데이트 되는 '클래식 클라우드 -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 '으로 먼저 만나볼 수도 있다. 1회부터 한 회도 빠트리지 않고 애청하고 있는 방송이라서 시리즈 출간이 반갑다. 앞으로 출간될 책들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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