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황가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넌 몰라도 돼." 아이가 어른에게 뭔가를 물었을 때 어른이 이렇게 답하면 순순히 받아들일 아이가 몇이나 될까? 적어도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의 주인공 모미크는 어른들이 쉬쉬하는 비밀일수록 알고 싶어하는 소년이다. 1959년에 이미 아홉 살이었던 모미크는 부모님과 동네 사람들이 부르는 '저 멀리'가 어디인지 궁금하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얼마 전부터 한 집에서 살게된 안셸 할아버지의 팔목에도 적혀 있는 '암호'도 풀고 싶다. 매일 밤 어떤 여자가 옷을 홀딱 벗고 비명을 지르며 마을을 뛰어다니는 이유도 알고 싶다. 모미크는 별 뜻 없다는 듯 천진한 얼굴로, 때로는 가르쳐주지 않으면 울어버리겠다는 표정으로 어른들을 달래고 조르지만 그 누구도 모미크에게 속시원히 말해주는 법이 없다. 


최후의 수단으로 모미크는 어른들을 괴롭히는 '나치 짐승'이라는 녀석을 스스로 찾거나 길러내기로 결심한다. 다행히 모미크의 결심은 해프닝으로 끝이 나지만, 훗날 어른이 되고 작가가 된 모미크는 어린 시절 자신은 물론 온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 트라우마를 글로 쓴다. 모미크의 어린 시절을 그린 제1장 '모미크'에 이어지는 제2장 '브루노', 제3장 '바세르만', 제4장 '카지크의 삶에 관한 완전한 백과사전'이 바로 어른이 된 모미크가 쓴 세 편의 작품이다. 제2장 '브루노'에서 모미크는 존경하는 작가 브루노의 비극적인 최후를 마치 한 편의 동화와도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로 재탄생시킨다. 이는 작가가 실제로 많은 영향을 받은 폴란드의 초현실주의 작가 브루노 슐츠(1892-1942)에게 바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제3장 '바세르만'은 안셸 할아버지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해서 쓴 작품이다. 수용소장 나이겔은 안셸 할아버지, 즉 바세르만이 자신이 어린 시절 숭배하다시피 했던 동화를 쓴 작가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자 바세르만은 일종의 계약을 제안한다. 바세르만이 나이겔에게 동화의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동화가 끝나면 바세르만을 처형하는 것이다. 이들은 매일 함께 이야기를 만드는데,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카지크다. 제4장 '카지크의 삶에 관한 완전한 백과사전'은 카지크의 삶을 백과사전 형식으로 배열한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라는 독특한 제목은 바로 이 4장의 형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저자 다비드 그로스만은 모미크와 마찬가지로 전후 이스라엘에서 태어났다. 전쟁은 물론 홀로코스트도 경험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태어난 나라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와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해,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그가 1986년에 발표한 이 두 번째 장편 소설이다. 나 역시 전쟁은 물론 홀로코스트도 경험한 적 없지만, 조부모, 외조부모가 전쟁과 식민 치하를 경험했고,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그 시절의 경험에 대해 일언반구도 들어본 적이 없기에 저자와 저자의 페르소나인 모미크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혹시 내가 문학을 좋아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은 내 나름대로 나를 둘러싼 역사를 알려고 하는 몸부림일까. 다비드 그로스만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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