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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평점 :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 언제부터인가 작품 자체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신작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그의 작품을 읽었는데 모처럼 책을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로 흥미진진한 작품을 만났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오랜만에 명성에 걸맞은 신작을 쓴 줄 알았더니 출간 연도가 1992년. 이거 실화냐...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를 지금의 인기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비밀>이나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 등이 나오기 수년 전에 쓰인 소설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완성도다.
소설은 한 여성이 남성의 지도에 따라 열심히 트레이닝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트레이닝이 끝날 때쯤 건물 안으로 낯선 사람이 들어왔다는 신호가 울리고, 남자는 여자를 방 안에 가둔 채 밖으로 나간다. 장면이 바뀌고 세 남자와 한 여자가 어두운 밤중에 한 건물 안으로 침입하는 모습이 나온다. 운동선수 출신인지, 그 어떤 기구나 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 높은 벽을 타고 건물 안에 들어온 네 사람은 때마침 등장한 키 작은 남자를 총으로 쏘고 건물에 불을 지른 뒤 자리를 벗어난다.
한편, 화재인 줄 알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총상을 입은 시체를 보고 수사에 착수한다. 한 순경이 화재가 일어난 건물 옆에 튼튼해 보이는 창고가 있어서 무심코 들어갔다가 살해를 당하는데, 경찰은 사건 현장 감식을 통해 순경을 살해한 자가 이 창고에 갇혀서 훈련을 받고 있던 의문의 육상 선수이자 인간의 신체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탄생한 괴물 같은 존재, 즉 '타란툴라'임을 알아낸다.
이야기는 하룻밤 사이에 자신을 일본에 데려온 스승을 잃고 혼자가 된 타란툴라가 스승의 복수를 위해 스승을 죽인 범인들을 찾아 나서는 과정, 타란툴라가 자신들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범인들이 타란툴라를 피해 도망치는 과정, 경찰이 이들의 관계를 파악하면서 이들의 행방을 찾는 과정, 이렇게 총 세 가지 갈래로 진행된다.
이 중에 타란툴라의 이야기가 단연 압권이다. 여자인데도 190cm가 넘는 장신이며 오랜 기간 동안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받았고 스승으로부터 '악마의 실험'까지 받아서 가히 초인적인 능력을 지니게 된 타란툴라는 자전거 하나로 야마나시 현에서 도쿄까지 가는 정도는 가뿐하고, 사람 하나쯤은 손바닥 하나로 죽일 수 있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손색이 없는 작품인데 영화화되지 않은 걸 보면 타란툴라의 연기를 할 만한 배우를 찾기 힘들어서가 아닐까(영화화가 힘들면 애니메이션화는 어떨지).
성적만 중시하는 엘리트 체육 문화와 이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자세하게 묘사한 점도 인상적이다. 국제 대회 성적과 메달 개수에만 집착하고, 정작 선수 개개인의 인권이나 생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인권을 억압하고 말살하는 문화는 한국만의 것이 아닌가 보다. 올림픽 같은 큰 국제 대회가 있을 때마다 논란이 되는 도핑 문제를 언급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것만 가르치고 남과 더불어 사는 것에는 무관심한 분야가 어디 스포츠뿐일까. 잘못된 경쟁, 어긋난 사랑, 비뚤어진 열정의 결말을 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